“스페인 독감이 되돌아왔다.”

독일 슈피겔지는 최근 기사에서 스페인 경제상황을 전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스페인 독감’이란 20세기 초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공포의 인플루엔자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스페인발 공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덮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유로존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스페인에 쏠리고 있다. 스페인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나타내면서, 모처럼 잠잠해지는 듯했던 유로존 위기가 또다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스페인은 국채금리가 최근 6% 선을 넘어서면서 구제금융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7%대에 바짝 다가섰다. 국채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의 불안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국채 금리가 폭등세를 나타낼 경우, 스페인도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는 수순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스페인은 결국 제2의 그리스가 될까. 국제금융시장이 그 가능성만으로도 떨고 있는 이유는, 스페인이 유로존 4위 경제대국인 만큼 파산 지경에 이를 경우 유럽연합(EU)이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페인 정부는 고강도 긴축재정을 펼쳤지만, 올해 정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79.8%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지난 1990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업률 역시 유로존 최고치인 24%, 청년실업률은 2명 중 1명이 실직자인 50%에 육박하면서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스페인 경제가 이처럼 중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라진 ECB 자금지원 약효 = 4월 들어 스페인 국채금리가 또다시 요동치는 직접적인 원인은 역설적으로 ‘유로존 소방수’ 유럽중앙은행(ECB)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ECB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위험 수위로 치솟자 이를 끌어내리기 위해 무려 1조유로를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형식으로 풀었다. 거저나 다름없는 연 1% 금리로 유럽은행들에게 대출을 해줘 국채 매입을 유도한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효과를 나타내 금리는 안정권인 4%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 3월16일 이후 한 달이 넘도록 ECB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자 스페인 국채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사라지며 금리가 다시 치솟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과 저축은행 부실 = 스페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다.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스페인 경제는 부동산 경기 과열로 거품이 잔뜩 낀 상태였다. 저금리로 부동산 개발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한때 유럽지역 신규 주택의 30%가 스페인에 집중될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부동산 시장은 위축의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몰락 수준에 이르게 됐다. 현재 스페인 집값은 2007년 대비 거의 반 토막 난 상태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저축은행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로 부동산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한 것이 결국 스페인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저축은행은 스페인 전체 은행산업에서 자산 기준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4.3%를 차지한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스페인 은행들이 부동산 재발업자에 대출해준 금액은 3230억유로, 이 중 절반이 넘는 1750억유로는 부실자산으로 추정된다.

◆방만한 지방재정 = 스페인 정부는 재정목표를 지키지 못한 지방정부의 예산 통제 권한을 자동적으로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지방정부 재정이 스페인 경제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뇌관이 된 것은 스페인의 독특한 역사와 관련이 깊다. 바스크 분리주의 등으로 몸살을 앓아온 스페인에는 17개 지방자치정부가 있다. 지방정부는 학교, 병원 등 공공재정의 3분의 1을 집행하면서 강력한 경제독립권을 행사해 오고 있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긴축을 외쳐도 지방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는 17개 지방정부 중 최소 1∼2곳의 재정권을 박탈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과연 얼마나 성공할지가 관심사이다.

◆라호이 정부에 대한 불신 = 지난해 12월 출범한 보수성향의 국민당 소속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지난 3월 라호이 총리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를 GDP 대비 4.4%에서 5.8%로 일방적으로 올렸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GDP 대비 8.5%를 기록해 당초 목표치 6% 달성에 실패한 것도 현 정부의 긴축의지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스페인 국채 금리가 위험 수위로 치솟는 데에는 라호이 정부가 경제 회복을 이끌 만한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기 힘들 것이란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

스페인은 결국 구제금융을 받게 될까. 외신들은 EU가 스페인 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비책으로 최대 4400억유로 대출 여력을 갖춘 유럽재정안정기구(EFSF)의 초저금리 대출을 단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ECB를 통한 스페인 국채매입 재개, 재정적자 달성 목표 완화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처방이 효과를 낸다 하더라도, 스페인 경제 펀더멘털이 건강을 되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