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20대 여성 엽기살해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헛발질 및 부실투성이 수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문화일보가 가장 먼저 수사의 문제점을 연일 조목조목 제기하면서부터였다.

이 여성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2일 새벽 이후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범죄·검거사건으로 덮일 뻔했었다. 그러나 문화일보가 ‘출동 경찰 13시간 헤매는 사이 범인 살해 뒤 밤새 시신 훼손’(4월4일자 8면), ‘피해자 현장 20m 거리 콕 찍어 신고했었다’(4월5일자 9면) 등 연일 사회면 톱으로 경찰 수사 문제점을 폭로했고, 다른 언론 매체들이 6일 이후에야 줄줄이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112신고의 문제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경찰이 계속해서 사건을 축소 혹은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에 경찰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거세지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9일 결국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퇴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자칫 묻힐 뻔한 한 20대 여인의 억울한 죽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그 전모가 드러날 수 있었다.

9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조 청장의 사의 표명 기자회견 직후 조 청장과 마주앉은 유가족들은 피맺힌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가족들은 “경찰이 우리 아이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어요…그건 모든 국민이 알고 청장도 알 겁니다”라면서 울부짖었다. 이번 사건이 치안총수의 사퇴로까지 이어졌지만 유가족들의 한 맺힌 절규는 끝날 줄 모르고 있다.

국민들의 공분은 희생된 20대 여성이 바로 내 딸이 될 수도, 혹은 내 누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처절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경찰에게 국민들은 생명을 지켜줘야 할 ‘사람’이라기보단 신고접수 처리 ‘대상’이었다.

경찰의 상황 인식은 안이했다. 생명을 구해달라는 다급한 국민의 요청도 경찰이 신고 처리 대상으로만 보면 ‘처리’ ‘보고’ ‘행정’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단순 성폭행 사건일 수도 있어서…” “부부싸움 같은데…” 등 경찰의 황당한 변명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치안을 지키는 곳은 경찰이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범의를 감지할 때, 낯 모르는 사람이 내 신변을 위협할 때, 내 생명이 위기에 놓일 때 기댈 곳은 경찰밖에 없다. 경찰은 이번 파문을 “재수없게 걸려들었다”고 치부할 게 아니라 국민들의 공분 속에서 뼈를 깎는 반성부터 해야 한다.

박정경 사회부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