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시위대가 ‘부정 선거 의혹’과 ‘중국 내정 간섭’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중국 아웃” 등을 외치고 있다.

■ 선거개입설에 ‘반중 정서’ 확산

탄핵반대 집회 ‘중국 OUT’ 피켓
“중국인 임산부 폭행당했다” 주장도

국내 거주 중국인 불안감 커져
유학생들은 “학교가기 무섭다”

12·3 비상계엄 이후 ‘부정 선거 의혹’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이른바 ‘중국 내정 개입설’이 확산되면서 중국인 혐오 정서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과격 지지자들이 중국인을 향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국내 거주 중국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혐중 정서는 사회적 갈등을 낳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탄핵 반대 지지자들의 혐중 정서는 온라인을 벗어나 길거리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CCP(중국공산당) OUT’ 피켓과 함께 중국과 북한의 국기가 정의의 여신상의 두 눈을 가린 이미지 위로 ‘더불어공산당’ ‘인민판사’ ‘대한민국 법치 사망’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다니는 시위자가 등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법이 빨갱이에게 먹히고 있다”며 “중국 아웃”을 외쳤다. 지난 9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의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는 60대 시위자가 시민을 붙잡고 “중국인들이 한국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안겨 주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화교 출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가짜뉴스 영상’을 들이밀기도 했다.

국내 거주 중국인들은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11일 오전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인 오모(65) 씨는 “최근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지인이 ‘중국인이라 못 믿겠다’며 잘리는 일이 있었다”며 “집회 현장에서 중국인 임산부가 폭행당했다는 의혹을 접한 날에는 이곳 상인들끼리 모여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전했다. 당시 논의 끝에 일부 상인들은 지난 설 명절에 중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한국에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는 중국인 A(58) 씨 또한 “최근 들어 중국인들이 한국인 일자리를 뺏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며 “어제는 일하면서 안전모 한 개만 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아 말싸움을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림동 한 식당 종업원은 “가뜩이나 계엄 이후 가게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혐오까지 커지니 너무 속상하다”며 “우리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도 비슷한 분위기다. 한국에서 5년째 유학 중인 중국인 대학원생 B(26) 씨는 “최근 길을 걷는데 한 젊은 남성이 ‘중국인 ×져라’라며 욕설을 한 적 있다”며 “개강 이후 캠퍼스에서 유사한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C(37) 씨 또한 “화교 관련 가짜뉴스 영상을 보면서 캠퍼스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겠구나 공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중국인 혐오는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인 조선족에 대한 증오와 미움으로까지 번져 이들에겐 생존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며 “혐중 정서를 자극하는 가짜뉴스 영상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지금과 같은 중국인 혐오가 ‘비합리적인 공포’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노수빈 기자 knowsbean9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