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을 포함한 협정서 내용의 일부 개정 가능성에 대해 미국 측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부의 조율은 “ISD 재협상에 대한 미국 측 약속을 받아오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사실상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대응이 주목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6일 “미국도 현재 국내의 정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며 “한·미 FTA 발효 이후 개정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과 비공식적으로 서로 조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ISD 관련 조항은 폐지나 개정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국회가 정부에 요청하면 어떤 불편한 점이 있는지 미국과 협의하기로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측이 제기하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한국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사전 조율의 결과로 보인다. 야당의 반대로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이 지연되고 있는 한국 정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미국이 ISD 논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사실상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2 ~ 13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실무자들이 협정서 개정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직접 이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통령은 15일 국회에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정상들 간에 논의된 내용은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우리가 요구하면 미국이 응하게 돼 있는데 우리가 요구하려고 하니 미국이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것은 주권 국가로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비준 이후 재협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미국도 이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민주당은 더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영출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