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찜통 같은 무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고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의 힘’으로 불리는 갯장어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민어찜, 삼계탕, 보신탕 등으로 더운 여름에 부족한 기운을 보충했지만 갯장어 또한 이에 못지않은 보양식품으로 꼽힌다. 갯장어 주산지는 전남 여수다.

지난해 여수에서는 198t의 갯장어가 잡혀 국내 전체 어획량(1358t)의 15%를 차지했다. 월별 생산량은 8월이 98t으로 가장 많았고 5월 9t, 6월 53t, 7월 90t, 9월 56t, 10월 36t 등이다.

지난 12일 갯장어잡이 어선과 전문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여수시 경호동 대경도를 찾았다. 대경도는 여수 국동 선착장에서 여객선 ‘월호호’를 타고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대경도에는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사용해 주낙으로 갯장어를 잡는 어선 50여척이 있다. 갯장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음식점도 5곳이 성업 중이다. 이날 K회관의 경우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3시쯤인데도 외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방에서는 조리장 윤현철(47)씨가 ‘데침회(유비키)’용으로 쓸 갯장어를 매우 빠른 동작으로 손질하고 있었다. 윤씨는 “끓는 육수에 갯장어를 살짝 데쳐 먹는 데침회의 경우 잔가시가 입 안에서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칼집을 얼마나 촘촘하게 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고 말했다.

뱀장어목 갯장어과에 속하는 갯장어를 여수 사람들은 ‘참장어’라고 부른다. 뱀장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등쪽은 청갈색, 배쪽은 청백색의 빛깔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회유성 어종으로서 제주도 남방 해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우리나라 남·서해안으로 북상한 후 가을에 다시 남하한다.

이곳 주민들은 갯장어를 또 ‘하모(ハモ)’라고 부르는데, 이는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유래된 말이다.

갯장어와 비슷한 종류로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 민물장어로 불리는 뱀장어, 곰장어로 불리는 먹장어가 있다. 갯장어는 모양새와 맛이 붕장어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격은 한철(5∼10월) 잡히는 갯장어가 연중 잡을 수 있는 붕장어보다 더 비싸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차형기(49) 연구관은 “여수 연안에서 갯장어가 많이 잡히는 것은 성장기 갯장어들이 좋아하는 잡어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갯장어가 먹이를 쫓아다니는 ‘회유’를 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수 연안은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온도 적당해 어린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풍부한 해역이다. 차 연구관은 “갯장어는 알에서 깨어나 5~6년이 경과하면 어미(70㎝ 이상)가 돼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여수에서 잡히는 것은 90% 이상이 70㎝ 이하(3~5년생)”라고 덧붙였다.

갯장어는 3마리 무게를 합쳐 1㎏쯤 되는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길이 60㎝ 안팎으로 살집이 많고 육질 또한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수 어민들은 어족자원 관리를 위한 자체규정에 따라 40㎝ 미만 크기가 잡히면 곧바로 놓아주고 있다.

갯장어에 대한 세간의 오해 한 가지. 8월이 지나면 갯장어철이 끝난다고 알려진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9, 10월에는 동면 준비를 위한 영양분이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담백한 맛이 난다.

16년간 갯장어 전문음식점을 운영해온 박치현(46)씨는 “갯장어는 스태미나가 필요한 운동선수나 수험생, 신체허약자가 먹으면 활력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죽은 갯장어로는 회나 데침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식중독이나 비브리오패혈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식품”이라고 말했다.

여수 = 글·사진 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