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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가로서 임재범만큼 다사다난한 날들을 겪은 이도 드물 겁니다. 무서운 보컬리스트로 시작된 그의 음악 인생은 어느새 ‘기인(奇人)’이란 꼬리표를 달기 무섭게, 아무도 못 말리는 ‘악동’으로 그려지기 일쑤였습니다. 기행(奇行)의 시작을 보여준 것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SBS의 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그가 갑자기 사라진 일이었습니다. 매니저도 몰랐던 그의 ‘잠수’는 이후 산속에 들어가는 기행으로 이어지면서 각종 소문을 양산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91년 솔로 데뷔 13년 만인 2004년 9월23일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솔로 이후 처음 갖는 공연 때문에 연 이 회견에서 그는 세 살 난 딸아이 소식을 함께 전하며 환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습니다. 그의 복귀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고,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 듯했습니다.

기자회견 후 가진 첫 단독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한 박주원은 임재범의 창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헤비메탈을 연주하면 보통 기타 음이 강하기 때문에 보컬이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재범이 형의 창법은 그 강한 기타 리프(Riff·반복선율)를 뚫고 들어오더라고요. 제 기타 소리를 못 들을 정도였죠. 하긴 유리창도 흔들리는 걸 봤을 정도니까요.” 박주원은 “그의 창법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며 “그냥 듣는 순간 닭살이 돋았다”고 했습니다. 그 출중한 보컬리스트는 그러나 그 무대 이후 여러 번 기행을 일삼았습니다. 어느 방송 녹화에선 폭력을 휘두르다 또 잠적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잊어질 줄 알았던 임재범이 요즘 음악계와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으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역시 뛰어난 가창력’ ‘록 발라드의 최고봉’ 같은 극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집니다. 그가 무대가 아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송에 출연하면서 그의 ‘기행’이나 ‘일탈’은 흔적조차 자취를 감춘 듯합니다. 대신 듣고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짓누르는 일들이 그의 곁에 맴돌고 있습니다. 출연 전엔 아내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 했고, 얼마 전엔 그의 맹장 수술 소식도 들어야 했습니다.

방송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가창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비로소 자신을 버리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세상을 피했던 로커, 각종 종교를 마스터하며 자기 세계에 함몰했던 기인의 흔적은 이제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 앞엔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위해, 그리고 그의 음악을 아끼는 대중을 위해 뼛속까지 파고드는 선율로 감동을 심어주는 가수 임재범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의 2집 수록곡 ‘비상’을 다시 듣고 싶은 순간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