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면담 불발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초청한 상태에서 방중한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여기엔 미·중간의 치열한 대북선점경쟁이 깔려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시민 아이잘 말론 곰즈 석방을 위해 지난 25일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난 27일 귀국한 것에 대해 미국무부는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CNN 등은 “북한의 행태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는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행을 주선할 때 “김 위원장 면담이 조건”이라는 입장을 북측에 밝혔고, 북한은 이에 따라 카터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후 8월11~13일 미국무부 직원과 의료진의 방북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행이 최종 확정됐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포기하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게 된 배경과 관련,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2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카터 방북을 통해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 조건으로 비핵화를 요구하고 북한은 이에 대해 6자회담 복귀의지를 천명한다는 구도였다”면서 “북·미간의 기류를 간파한 중국이 정상회담 카드로 북한을 유혹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3·26천안함침몰사건 후 일관되게 북한을 감싸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반대해온 것은 대북이니셔티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카터 전 대통령이 천안함 및 북핵 중재자로 부상할 경우 중국의 대북이니셔티브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저지작전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중국은 급작스럽게 카터-김정일 면담 불발 작전을 세웠고, 후 주석은 27일 이례적으로 창춘(長春)에서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게 됐다는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이 카터 면담을 포기한 것을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에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해석과 “중국이 제안한 대가가 워낙 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이에 대해 “알고도 주도적으로 안 만난 것인지, 아니면 수동적으로 그런 상황이 조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도 “아마도 김 위원장이 주체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제시된 매혹적인 카드를 김 위원장이 직접 골랐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청와대가 지난 26일 오전 김 위원장의 방중사실을 공개한 것은 카터의 대북 이니셔티브를 방해하는 중국의 행보에 대한 우회적 불만표시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