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9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일대를 둘러봤다.

지린성 성도 창춘을 출발한 김 위원장은 북쪽 하얼빈으로 향해 29일 하루 동안 중국 4대 대학 가운데 하나인 하얼빈공대와 하얼빈 농업박람회장, 그리고 황무지를 개척해 아시아 최대 곡물산지로 거듭난 북대황농업집단공사를 찾아 북한의 경제재건을 꿈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찾은 하얼빈은 김일성 전 주석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린성 위원(毓文)중학에 재학 중이던 김일성은 1929년 12월 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 ‘폭동선동’ 등의 혐의로 동북군벌에 체포되면서 감옥생활을 했으며 1930년 5월 석방된 뒤 첫사랑이던 지린여중 조선족 여학생 한영애와 함께 중국인 신혼부부로 위장해 도피한 곳이 하얼빈이다.

하얼빈 잠입에 성공한 김일성은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지하공작원으로 일하다 지린동북지구 공산청년동맹 제1서기로 임명된다.

하지만 김일성은 이로 인해 하얼빈에 남아 계속 혁명지도를 하려던 한영애와 헤어졌으며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었다. 이후 한영애는 김일성을 찾아 헤매다 한국전쟁당시인 1950년 9월 초 평양 부근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숨졌다.

하얼빈은 또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위해 1936년 결성된 동북항일연군(聯軍)에 투신하면서 깊은 우정을 맺은 천레이(陳雷) 전 헤이룽장성 성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동북항일연군 참전자 가운데 김 전 주석과 천 전 성장은 유달리 각별한 교분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일성은 생전인 1964년 중국 방문 당시 하얼빈을 찾아 천 전 성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천 전 성장은 김정일 위원장을 친자식처럼 각별히 아꼈고 김 위원장 역시 그를 친아버지처럼 깍듯이 대하며 따랐다. 천 전 성장이 2006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친히 조문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으며 하얼빈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선양(瀋陽) 총영사 등 3명의 북한 측 인사를 보내 조문토록 했다.

이처럼 하얼빈은 김일성뿐 아니라 김 위원장에게도 남다른 감회에 젖게 하는 ‘혁명 성지’이다.

베이징 = 한강우특파원 hanga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