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는 한인사회를 훈훈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파리에 불법체류하고 있던 중국동포 A(여)씨가 가슴통증과 피로누적으로 쓰러져 동네 의원으로 실려갔다. 엑스선을 찍는 등 진료를 끝낸 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암인 것 같으니 정밀진단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불법체류자 신세인 A씨로서는 청천벽력이었다. 국립암센터로 옮겨진 A씨는 정밀 조직검사를 거쳐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유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난 A씨는 6개월 가량의 통원 치료기간을 거친 뒤 마침내 최종 완치 판정을 받았다. A씨는 불법체류자였지만 수술비용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A씨의 수술비용은 질병보험(건강보험)이 아니라 정부의 사회복지기금에서 지출됐다. 이 사건은 한동안 파리의 한인교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파리에서 10년을 살았다는 교포 김모씨는 “프랑스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돼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A씨의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완벽한 복지제도가 정말 부러웠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물론 암 등 중증·난치성 질환에 대해 100% 질병보험의 혜택을 받아 완치할 때까지 모든 치료비용이 무료다.

지난달 파리시내 19구 플랑드르가의 지역질병금고 부속병원에서 만난 도레스 박사는 “프랑스에서는 감기 등 가벼운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30% 수준”이라면서 “경증질환의 경우 본인 부담비율이 높고 중증질환 일수록 질병보험의 혜택을 많이 받는 것이 질병보험제도 원래 취지”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각종 암, 당뇨, 에이즈 등 30여가지의 중증·난치성 질환에 대해 100%의 질병보험을 적용, 치료가 끝날 때까지 보험 혜택을 받는다. 진료비용이 많이드는 중병일수록 보험 혜택을 많이 받는 셈이다.

암 등 중증질환에 걸려 몇년 병치레 하면 가정경제가 흔들흔들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현재 한국에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비율은 54%수준에 불과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경증질환 진료비의 본인부담 비율은 확대하고 중증질환일수록 보험혜택을 많이 받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매달 건강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의사생활 25년째인 도레스 박사는 “특히 암의 경우 조기발견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에서도 각종 암검진을 하는데 보험적용 비용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유방암의 경우 50~74세의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2년마다 한번씩 하는 정기 검진비용에 대해 질병보험 급여혜택을 적용해 무료로 실시한다.

그는 또 “프랑스는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흡연 및 음주자가 가장 많아 이로인한 암 사망률이 최고”라면서 “역시 폭주 등 사회문화가 비슷한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지역질병금고의 마르티네즈 홍보실장은 “프랑스 남성 사망자 3명중 1명, 여성 사망자 4명중 1명은 암이 원인”이라며 “위암·전립선암 등의 정기검진에 대해서도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보험재정 때문에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에서는 연평균 1만명의 직장인들이 암에 걸리고 있어 최근 직장인들의 의료를 담당하는 ‘직장 전문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도 이같은 제도를 도입해 볼 만하다”고 충고했다.

파리〓한평수기자 pshan@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