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교육 양극화의 단면 : 영어유치원 4만명 시대

수업 파행… 또래 갈등도 빈번
“영유 안나온 학생 박탈감 느껴”

‘영유(영어유치원) 열풍’은 특히 ‘영유 출신’이 절반을 넘는 학군지 초등학교 교실 풍경도 바꾸고 있다. 영유 출신과 ‘일유(일반유치원) 출신’ 또는 영어 사교육을 일찍 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 ‘영어 격차’가 벌어지면서 학교 영어 수업이 파행되기도 하고 또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3일 현장 교사들은 아이들의 지나친 영어 선행학습이 수업 분위기를 망치고 아이들끼리 불화를 조장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A 씨는 “대치동 같은 학군지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생의 80%가 영유 출신”이라며 “3학년 때 수업에서 ‘파닉스’를 가르치게 되는데, 대부분 영유 출신이라 2~3명을 제외하고는 파닉스를 넘어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A 씨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나다’를 다시 배우는 꼴이니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수업 참여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목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전담교사를 맡고 있는 김모(28) 씨는 “수업 때마다 영유 출신들이 ‘저 이거 아는데요’ ‘시시해요’ ‘재미없어요’라며 딴지를 걸고 딴짓을 하는 경우가 많아 식은땀을 흘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정규 교육과정을 따르는 아이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기 영어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움츠러들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5년째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정모(32) 씨는 “영유 출신 학생이 파닉스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에게 ‘아직 이것도 모르냐’ ‘발음이 왜 그러냐’ ‘지금 이걸 배우면 어떡하냐’며 무시하는 경우가 꽤 발생한다”며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무시가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이런 친구들 앞에서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정 씨는 “학부모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영어유치원에 더 목을 매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전국초등교사노조 관계자는 “영유 출신 아이들 중에는 소통 능력, 감정 공감 능력, 감정 통제 능력 등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율·노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