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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곳에서도 정원 가꾸며 외국어 공부 하시나요?

  • 입력 2023-11-15 09:10
  • 수정 2023-11-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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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서 아버지(왼쪽), 어머니(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젊어서 더욱 애틋하다.



■ 그립습니다 - 언론인 서송묵(1938∼2020)

그립다는 말은 수많은 감정의 파편들을 거느리는 단어이다. 특히나 돌아가신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내게 많은 사랑을 준 존재이기에, 마치 황폐한 들판에 서서 혼자 부재하는 이를 부르는 것처럼 애달픈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그리운 사람은 돌아가신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존함은 서송묵. 범띠이며 1938년생 음력 5월 10일에 제주도 서귀포의 도순동에서 태어나셨다. 올해 11월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3주기가 된다.

아버지와 딸의 사이가 정겹듯, 나는 어릴 적부터 유독 아버지를 따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엄격한 반면, 딸에게는 한없이 사랑을 베푸는 ‘딸바보’셨다. 아버지는 키가 훤칠하고 멋진 미남형의 외모를 지니고 계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상냥한 품성과 유머스럽기까지 해서 주변에는 아버지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또, 술을 즐기셔서 아버지의 귀가 시간은 늦을 때가 많았다. 우리는 밤에 졸린 눈을 비비며 맛난 간식을 사서 품에 안고 오는 아버지를 오래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두 개로 압축한다면, 외국어 공부와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는 서귀포시 도순동에서 자라서 서귀포의 서귀중학교와 제주시에 있는 오현고교를 졸업하셨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한국외대 서반어과(현 스페인학과)를 졸업하셨다. 아버지는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으로, ‘언론고시’ 패스 후 중앙일보에 오랫동안 재직하다가 언론통폐합이 되면서 연합통신 제주 지사장으로 근무했고 언론중재위원도 지내셨다.

아버지의 젊은 날 꿈이 외교관이었을 만큼 아버지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 영어와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셨다. 아버지의 외국어 공부 일화는 아버지 친구분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아버지는 언론사에서 퇴직하고 밀쳐두었던 외국어 공부에 집중하셨다. 어떨 때는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공부하셨다. 나이가 드신 아버지가 공부하는 모습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나 역시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아버지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아버지는 조그만 상을 마련해 항상 머리맡에 두고 연필을 깎아서 나무로 된 필통에 꽂아두곤 하셨다. 당시에 녹음된 영어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공부하고 학원에도 오랫동안 다니기도 하셨다. 지금도 아버지가 공부하면서 작성한 내용과 메모를 볼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 울컥할 때가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청력이 떨어져서 수강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같다며, 학원을 그만두며 많이 속상해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독했을까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아버지와 관련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은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이다. 특히나 딸을 아끼셨던 아버지는 딸들에게 계절별로 개화 시기가 다른 꽃과 나무를 식재해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주셨다. 잔디가 푸르고 색색의 기묘한 꽃이 가득한 아버지의 정원에서 나는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과 시심을 쌓을 수 있었다.

만약,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면 아버지는 아마도 그곳에서도 나무와 꽃을 가꾸고 ‘고장 난 벽시계’를 맛깔스럽게 부르시며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가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주기가 된다. 그리고 나의 다섯 번째 시집 ‘애월’(시인수첩·2023)이 나온다. 아버지와 관련된 시도 여러 편 실려 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분명, 그 따스하고 넉넉한 제주 바다 같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것이다. 못난 내 시집을 나보다 더 아껴주셨을 것이다. 아버지, 그립고 사랑합니다. 저도 이제는 아버지를 기쁘게 기억할게요. 평안하세요.

큰딸 서안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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