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이빨 빠진 호랑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진행된 TV 연설을 통해 지난 23~24일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협박, 혼란은 실패할 운명이었다”며 화가 난 표정을 드러냈다. AP 연합뉴스

■ 안보 수장들과 공개석상 등장

“반란은 실패할 운명이었다”
프리고진 겨냥한 듯한 발언
정규군 대응 실패설 선 그어
러 외교 “서방기관 연루조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반란 종료 이틀 만에 대국민연설에 나서 “반란은 실패할 운명이었으며, 러시아는 ‘단결’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집권 23년 만에 치명상을 입은 리더십을 복원하기 위해 직접 수습에 나선 것으로, 반란 진압에 실패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까지 안고 가며 일단 체제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저녁 TV 연설에서 “(무장 반란은) 범죄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지목한 발언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눈에 띄게 화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바그너그룹 대원들을 향해선 “바그너 전사 대다수가 애국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국방부와 계약을 맺거나, 벨라루스로 가라”고 했다. 바그너그룹 폐쇄를 시사함과 동시에 나머지 용병들에 대해선 러시아 정규군으로 포섭할 길을 열어둔 것이다. 쇼이구 장관에 대해서는 ‘일단 유임’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안보기관 수장들과 회의를 진행했는데, 공개된 참석 명단에 쇼이구 장관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쇼이구 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휘소를 방문하는 47초 분량의 영상도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바그너 반란군이 모스크바 200㎞ 이내까지 진군할 수 있었던 데 대해 “사태 초기부터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내가 직접 명령했다”고 해명해 정규군의 대응 실패설에 선을 그었다.

푸틴 대통령이 기존 지도부를 옹호하고, 바그너그룹을 띄우고 나선 건 23년 동안 공고히 지켜왔던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대반격’ 작전을 시행 중인 상황에서 바그너그룹이 다시 쿠데타를 시도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고진이 이날 ‘푸틴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다’는 취지로 입장을 낸 지 수 시간 만에 예정에 없던 대국민 연설을 진행한 것 역시 빠른 대처를 위해서라는 평가다. 대신 ‘리더십 실패론’의 화살은 서방에 돌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현지 RT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보 당국은 바그너그룹의 반란에 서방 첩보기관들이 연루됐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정부가 정치적 수세에 몰리면 주장하곤 하는 ‘외세 개입설’의 재판인 셈이다.

한편 러시아 외교부는 중국을 방문 중인 안드레이 루덴코 외교차관이 이날 류샤오밍(劉曉明) 중국 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나 “한반도에서 미국과 동맹들에 의한 불균형한 군사 활동의 전례 없는 증가와 공동 핵 계획 실행으로 인해 지역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