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 日 사회에 퍼지는 ‘일본 침몰’ 불안감

작년 12월부터 세차례 지진
‘후지산 대폭발’ 경고 잇따라

2025년 예언한 99년作 만화
베스트셀러 3위 올라 역주행
드라마 ‘일본침몰’도 재조명

동일본 대지진 정신적 타격
코로나 겹쳐 무기력감 증폭
자극적 문화 소비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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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富士)산 대폭발 위기·일본 침몰 우려 확산…진짜 대재앙은 2025년 7월에 온다.’

지난 300년간 분화하지 않았던 일본 후지산이 올해 대폭발할 수 있다는 현지 지진학자들의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코로나19’ 등을 예언한 만화가 일본 서적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하는 등 일본 열도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여기에 권위 있는 지진학자가 거대 화산이 폭발하면 일본 국민 1억2000만 명이 모두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일본 넷플릭스에도 1년 안에 도쿄(東京)가 침몰한다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가 올라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떠오른 ‘일본 침몰’ 시나리오는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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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부터 3번 연속 지진…“이대로면 일본 소멸”= 화산학 전문가인 시마무라 히데키(島村英紀) 무사시노(武藏野)가쿠인대 특임교수는 최근 닛칸겐다이(日刊現代)와의 인터뷰에서 “300년 넘게 분화하지 않았던 후지산의 폭발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대표적 징후는 바로 지난해 12월 3일 3시간 간격으로 발생한 일본 야마나시(山梨)현 4.8 규모, 와카야마(和歌山)현 5.4 규모 지진. 이어 올해 1월 12일에도 이바라키(茨城)현 남부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시마무라 교수는 “3시간 간격의 지진이 후지산 마그마 흐름에 따라 일어난 지진이라면 화산 폭발이 가까워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산이 폭발하면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계열 주간지인 ‘아에라’는 지난 1월 초 다쓰미 요시유키(巽好幸) 고베(神戶)대 명예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도했는데, 연구팀은 규슈(九州) 중부에 2만8000년 전 일어난 규모 8.3과 같은 화산 분화가 일어나면 규슈 전역이 2시간 안에 화산재에 뒤덮이면서 700만 명이 곧바로 숨진다고 추산했다. 화산재가 다른 지역에도 50㎝ 이상 쌓이면서 4000만 명이 피해를 보게 되며, 결국 일본 인구 전체가 생활 불능에 빠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예측했다. 연구팀은 “초거대 분화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재해로, 일본이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일본 서점에선 ‘대재앙은 2025년 7월’ 예언 만화 역주행 인기 =‘일본 침몰을 넘어선 소멸’ 같은 무시무시한 전망이 잇따르면서 문화계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주간 베스트셀러 엔터테인먼트 서적 부문 3위에는 다쓰키 료(龍樹諒)라는 만화가가 1999년 그린 ‘내가 본 미래 완전판’이 올랐다. 이 만화는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사망, 고베(神戶) 대지진 등 전 세계 주요 사건 사고의 ‘예언 만화’로 주목받아왔다. 해당 만화는 1976년부터 1999년까지 작가가 꾼 15가지 꿈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20년 코로나19 출현도 예측하고 있다. 작가는 만화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 2020년 4월 정점을 찍고 사라진 뒤 10년 후 돌아온다’ ‘2011년 3월 동일본 어딘가에서 대재난이 일어난다’고 적었다.

문제는 이 작가가 더 무서운 예언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만화에서 ‘진짜 대재앙은 2025년 7월에 온다’고 적은 것. 만화 표지에는 ‘후지산 대폭발, 꿈이 의미하고 있던 것은…’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때문에 최근 일본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다시 올린 것. 만화는 절판 상태로, 중고시장에서는 10만 엔(약 104만 원) 이상으로 팔리고 있었지만, 최근 완전판이 나오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넷플릭스에도 1년 안에 도쿄가 침몰한다는 내용을 담은 톱스타 오구리 슌(小栗旬) 주연의 TBS 드라마 ‘일본침몰: 희망의 사람’이 올라오기도 했다.

◇화산·지진은 日 문화 단골 소재…현실 가능성 떠나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바뀐 인생관 반영 = 일본의 이런 분위기는 실제 화산·지진 가능성이 급상승했다기보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일본 사회의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일 문화 전문가인 황선혜 일본 정보경영이노베이션전문직대학(iU) 객원교수는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후지산 폭발’ ‘쓰나미’ 등이 주 소재가 되는 건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북한 소재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한국인들이 북한 영화를 보고도 전쟁이 두려워 남쪽으로 도망치지 않는 것처럼, 후지산 분화를 걱정해서 일본을 떠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 이면에는 일본 사회의 불안이 놓여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충격적 사건 이후 일본인, 특히 청년층의 가치관이 크게 변했는데 이런 심리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정신적 위축과 무기력함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에 앞서 만화 ‘일본침몰’을 발간했던 잇시키 도키히코(一色登希彦)는 지난 1월 16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당시 TV에서 허망하게 피해 상황을 볼 수밖에 없었다”면서 “만화를 통해 끔찍한 재해를 그려냈지만, 현실의 비참함이 이를 가볍게 추월했기 때문에 앞으로 뭘 그리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실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청년들이 결혼을 서두르고 해외 유학을 포기하고 자가를 마련하는 등 서둘러 현실에 안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면서 “이런 정신적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선 자극적 소재 소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맥락에 담긴 특수성과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