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에서 만난 10대 소년 소녀가 60년간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세가지 눈물버튼

자식 걱정에 조바심 ‘엄마’
매일 안부전화로 귀찮은 잔소리
결국은 위험에 빠진 딸 구해내

감정표현 서툰 말없는 ‘아빠’
“내가 덜자면 너희가 더잘까 싶어”
눈물 감추며 방파제 역할 돼줘

뒤늦게 부모심정 깨달은 ‘딸’
“엄마 인생 인정해주라” 장면에
시청자도 “부모님 전화드렸다”


“요즘 주말마다 펑펑 울어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관람평이다. 별다른 내용 설명도 없는 이 한 줄에는 “저도요”라는 답글이 줄줄이 달렸다. 지난 7일부터 4주간 매 주말 4편씩 공개된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가 28일 마무리됐다. 1960∼2020년을 관통하며 한국적 가족의 정서를 담뿍 담은 이 작품은 넷플릭스 글로벌 1위(비영어권)를 기록했다.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를 최대한 배제하고 울음보를 건드린 ‘폭싹 속았수다’의 3가지 눈물 버튼을 짚어봤다.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

‘폭싹 속았수다’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가장 큰 줄기다. 그 옛날, 광례(염혜란)는 당찬 딸 애순(아이유)을 낳고 새 시집을 갔지만 평생 ‘애순이 엄마’다. 그리고 그 애순은 열 살에 엄마 광례를 잃고, 스무 살도 되지 않아 엄마가 됐다. 공교롭게 또 딸, 금명(아이유)이다. 죽음을 앞둔 광례는 팔면 백환 받는 전복을 애순의 입에 넣으며 “니 주둥이에 들어가는 건 천환 같어”라며 웃는다. 납치당할 뻔했던 어린 애순을 구했던 광례는 이렇게 말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엄마 할 수 있어.”

조바심. ‘폭싹 속았수다’는 엄마의 내리사랑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엄마가 된 애순은 각종 사건 사고를 보도한 ‘9시 뉴스’가 끝나면 득달같이 금명의 하숙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금명은 그게 귀찮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애순은 첫 비행기를 타고 금명을 찾아갔고, 연탄가스를 마신 금명을 발견한 후 병원으로 옮긴다. 금명은 말한다. “그 조바심이 성가셨다. 그런데 그 조바심이 또 나를 살렸다.”

그 순간, 화면은 1970년으로 전환된다. 젊은 애순은 빨래를 하다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며 조바심을 낸다. 그 순간 아기 금명은 인형을 꺼내려 선반에 매달려 있었고, 그때 방문을 연 애순은 쓰러지는 선반 아래 있던 금명을 보호한다. 수많은 엄마들이 그 조바심으로 자식을 살게 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를 ‘잔소리’라 불렀다.

이미지 크게보기 ‘폭싹 속았수다’는 귀한 딸 애순(왼쪽)과 그의 딸 금명의 이야기다.

◇아빠,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폭싹 속았수다’를 ‘엄마의 이야기’라 한다면 아빠들이 섭섭하다. 그런데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그런 존재다. 엄마들이 자식을 혼낼 때도 뒤편에서 서성댈 뿐, 표현이 부족했다.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감정 표출에 서툴렀고, 그게 아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속을 끓였다.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중년이 된 관식(박해준)은 금명의 기숙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약속한 적도 없다. 그저 기다린다. 밤늦게 버스에서 내린 금명은 그런 아빠를 타박한다. 그래도 관식은 괜찮다.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기다림은 10시간, 만남은 10분이다. 그래도 행복한 게 아빠 마음이다.

그런 금명이 파혼을 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아빠는 일출 전 배를 띄우며 금명을 태웠다. 매일 해 뜨기 전 바다로 나간다는 관식은 “아빠는 해 보면 좌우지간 빌고 봐. 니들 잘되게 해달라고 만날 그냥 빌고 봐”라고 말한다. 금명은 관식에게 제주에서 가장 먼저 배에 오르는 이유를 묻는다. 그는 말한다. “아빠가 덜 자면 너희가 더 잘까 싶어서.”

관식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옛날, 크게 한 번 울었다. 방파제에서 막내아들 동명을 잃었을 때다. 하지만 자식이 살아 있는 한 아빠는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자식이 기댈 든든한 슈퍼맨이어야 하니까.

◇자식, 부모를 이해하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맞다. 그런데 이 마음은, 결국 부모가 돼 봐야 안다. 경험하지 않으면 깨달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성장한 애순이 금명에게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러니까 딸이 엄마 인생도 좀 인정해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간접 경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셈이다.

결혼해 보면, 자식 낳아보면 철든다 했다. 결혼을 앞둔 금명은 ‘양관식 오애순의 장녀’라고 쓰는 청첩장을 보며 “나는 그들의 금명이었다”고 되뇐다. 결코 가족 없이 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어미와 아비가 죽어도 자식이 살아지는 건, 그들 역시 건사해야 할 자식이 있는 어미와 아비이기 때문이다.

관식은 항상 금명에게 말했다. “아빠 여기 있어. 아니다 싶으면 빠꾸. 냅다 집으로 뛰어와.” 그 한마디가 그렇게 든든하다는 것을 금명은 뒤늦게 알았다. 면사포를 쓸 무렵, 이제 진짜 어른이 될 무렵 금명은 말한다.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있었다. ‘떨어져도 아빠가 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한 번은 말해줄걸.”

이런 금명의 마음은 ‘폭싹 속았수다’의 시청자들에게 전이됐다. 공개 초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넣어야겠다”다던 이들이 이제는 “전화드렸더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고 댓글을 단다. “형태는 달라도 우린 모두 이런 사랑을 받고 살았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는 반응은 임상춘 작가가 궁극적으로 끄집어내고 싶은 사람들의 속내였지 않을까.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