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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이 배후’ 추정되는 나발니 독살 시도 배경은…

벨라루스 大選불복시위 확산에
푸틴, 우크라·리비아 사태 연상
러시아 ‘反푸틴 시위’ 촉발 걱정

불복시위 지지하는 나발니 겨냥
루카셴코 대통령과 소원해진탓
벨라루스사태 직접개입 없을듯

지난 20일 러시아 중부 도시 톰스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를 향하던 비행기 안. 한 남성이 이륙 직후 진땀을 흘리다 화장실에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상의 주인공은 변호사이자 야권 정치인인 알렉세이 나발니(44). 러시아에서 최근 10년간 반(反)정부 운동을 주도해오며 13차례 투옥된 전적을 가진 인물이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그가 섭취한 것은 차 한 잔뿐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나발니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그를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발니의 체내에 독성 물질이 있었는지를 두고 미국·프랑스·독일 등 서방국들과 러시아 간 공방이 거세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벨라루스에서 격화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와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시도도 나온다.

◇푸틴이 독살 배후라면 이유는 벨라루스 때문? =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후 기자, 작가 등으로 활동해 온 러시아 전문가 마샤 게센은 지난 20일 미 잡지 더뉴요커에 기고한 칼럼에서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를 암살하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벨라루스 사태”라고 지목했다.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거세지기만 하는 대선 불복 시위에 푸틴 대통령이 ‘당황한’ 나머지 정적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나발니를 감옥에 가뒀던 지난 2013년, 수천 명의 사람이 체포될 것을 무릅쓰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상황을 목격한 푸틴 정권은 그간 가택연금이나 10∼30일 정도 단기간으로 잡아두는 ‘행정 체포’(administrative arrest) 등의 방식으로 나발니를 견제해 왔다. 게센의 표현을 빌리면 ‘한 번의 큰 타격을 날리기보다는 1000번의 잽을 날리는’ 방식을 통해 여론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나발니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통제해 온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듯한 푸틴에게 나발니가 얼마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센은 “벨라루스 사태는 선거 제도와 언론, 시민 사회가 거의 완전히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국가에서도 국민이 목소리를 낼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독재 정권이 이런 종류의 대규모 봉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반란을 주동할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을 살해하는 것뿐”이라고 짚었다. 실제 나발니는 최근 벨라루스 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 세력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리비아 사태 연상되는 벨라루스 사태 =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최근 벨라루스 시위 사태가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서의 2004∼2005년 ‘오렌지 혁명’과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두 혁명 모두 대선 재실시, 대통령 탄핵 등 ‘정권 교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 일간 더선도 게센의 분석을 전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같이 자신의 권력까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카다피는 1969년부터 2011년까지 42년간 리비아에서 장기 집권하다 소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중동·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몰락한 인물이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중 봉기가 독재 정권에 대한 축적된 불만을 터트리는 도화선이 됐던 것처럼,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 시위의 여파가 구소련권 국가들로 번져 나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구소련 국가면서 발트 3국으로서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한 리투아니아에서 벨라루스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32㎞ 길이의 인간 띠가 만들어지고, 우크라이나에선 2014년 ‘마이단 혁명’(정권 교체 혁명) 이후 동부 지역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에 맞서 싸워 온 100여 명의 활동가가 벨라루스 대사관을 향해 행진하는 등 주변국들의 연대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다. 더힐은 “평화 시위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을 끌어내린다면 벨라루스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러시아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줄 것”이라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사임하면 러시아 전역에서 푸틴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에선 이미 야당 소속의 세르게이 푸르갈 전 하바롭스크 주지사의 구속을 계기로 푸틴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져 오던 참이었다. 지난 9일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의 대항마로 나섰던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체류하면서 재선거와 정권 이양 준비를 위한 각계 대표들의 모임인 ‘조정위원회’를 창설하고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는 등 존재감을 키워 나가고 있다.

◇러시아, 벨라루스에 직접 개입은 하지 않을 듯 = 이번 시위가 과거 우크라이나 사태의 데자뷔와도 같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러시아가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앤더스 애슬런드 선임연구원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신뢰가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벨라루스 정부가 지난 7월 러시아 민간용병업체 소속 요원 33명을 체포한 사건 등으로 양국 관계는 최근 미묘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벨라루스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줄여온 푸틴 대통령은 시위 관련 성명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을 최고 권력으로서 지지한다는 선언 대신 “우호적인 양국 관계를 선호한다”는 원론적인 언급만 담았다.

무엇보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벨라루스 시위대의 화살이 러시아를 향해 있지 않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0여 년간의 역사를 지나 집단안보조약기구(CST),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등으로 구체화된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에 대해 벨라루스인들은 여전히 굳건한 믿음을 보이고 있다.

티하놉스카야 역시 이번 혁명이 “반러시아적이지 않다”며 만에 하나라도 러시아가 느낄 수 있을 불안감을 차단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애슬런드 선임연구원은 “벨라루스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혁명보다도 2018년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난 벨벳 혁명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를 “소련 붕괴 이후 가장 최근의 ‘색깔 혁명’(구소련권 국가에서의 공산주의 붕괴 혁명)”이라고 칭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를 통해 집권한 니콜 파쉬냔 총리의 리더십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선호하는 아르메니아는 현재 대형 러시아 국영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