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94년쯤 어머니(오른쪽)가 생신날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포즈를 취하셨다.

■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故 박덕순(1919∼2015) <상>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가 저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신 지 9년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늘공원에 와서 어머니를 뵙고 오랜만에 어머니께 어리광을 부려봅니다.

어머니! 59년 전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16년을 청상으로 계시다 지극히 가난한 집에 새엄마로 오셨었지요. 올망졸망한 5남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어린 제가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어머니의 결정이었습니다. 참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확실한 답은 74세 된 정신과 전문의인 저도 여태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희미하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이 우매한 아들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사춘기 소년이었던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

제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저에게 보여주셨던 그 의연한 모습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생명을 잃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우리 집 가난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숨은 늘어가 천장을 뚫을 정도고, 내 몸은 점차 마비가 올라와 가슴까지 감각이 없어지자, 불안은 집을 무너뜨릴 정도였습니다. 이제 살아있는 육신은 양팔과 목뿐이었습니다. 체중이 40㎏도 안 되는 어머니께서 내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온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 부끄럽고 감사하고… 그 복잡한 제 심정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은 그저 꿈이고 지금의 처지가 너무 한심했습니다.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령 확실하게 병명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병원비는 어찌 감당할 것인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한 줌의 빛도 보이지 않는 깊고 긴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내 생애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병수발 때문에 옷 수선가게를 접었습니다. 대신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 옷을 수선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인 미군 부대로 출근하고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양팔을 이용해 엉덩이를 밀어 장롱에서 아버지의 넥타이 하나를 꺼내 장롱 옷걸이에 간신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넥타이를 목에 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끙끙대는 와중에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께서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이내 저를 자신의 품에 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큰소리로 오열했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아무 말 없이 한참 울기만 했습니다. 제 팔자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팔자도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눈물을 닦아주던 어머니가 제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습니다.

“이렇게 잘생긴 내 새끼…엄마가 지켜주고 병도 고쳐줄게. 이제는 엉뚱한 생각 하지 마!”

“예, 엄마!”

저도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온 후 처음으로 만져보는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성경책을 가져왔습니다. 마태복음을 펴서 읽었습니다.

아들 김정곤(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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