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연설서 “모두 단합하자”
스페인 국왕도 “역경에 맞서야”

의료마비 3만5713명 확진 伊
“주민 40%는 여전히 돌아다녀”
유럽 확진자 中 넘어 9만여명

유럽 대륙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18일 9만 명을 돌파하며 중국의 8만 명대를 넘어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도전”이라며 시민들에게 이동을 제한해달라고 호소했다. 의료 시스템 붕괴 위기에 놓여 있는 이탈리아에선 주민들이 이동제한령을 지키지 않아 감염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누적 확진자 수는 3만5713명이고 스페인이 1만3910명으로 뒤를 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에선 1만1973명, 9134명이 감염돼 한국을 뛰어넘었다. 메르켈 총리는 TV 대국민 연설을 통해 “상황이 심각하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통일 이후, 아니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정도로 공동의 단합된 행동을 요구하는 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자신을, 지역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대국민 연설에서 “바이러스는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더 헌신하고 지지하고 단결해 역경에 맞설 것”이라며 국민이 당국과 전문가의 지시를 따라 방역에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피해 규모가 가장 큰 롬바르디아주는 의료진과 의료장비, 병실 부족으로 의료 마비 사태를 겪고 있다. 주내 병원의 중환자 병상은 800여 개지만 중증 환자는 1000명을 넘었다. 인공호흡기 등의 필수 장비도 부족한 상태다.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에 위치한 대형병원의 간호사는 NBC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롬바르디아와 에밀리아로마냐주는 축구장에 천막을 설치해 임시 병실로 쓰는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제노바에선 항구에 정박한 페리선을 임시 병원으로 사용키로 하고 현재 개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의료진의 바이러스 감염 규모도 심각하다. 전날 기준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 또는 간호사 수는 2629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많은 주민이 집 밖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줄리오 갈레라 롬바르디아주 보건부 장관은 “휴대전화 데이터 분석 결과 주민의 40%는 여전히 어딘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밀라노의 출퇴근시간대는 여전히 지하철이 승객으로 붐비는 상황이다.

스위스에서 약물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자 연방 정부는 “공황에 빠질 이유가 없다”며 해열제, 해열진통소염제 등의 구입량을 제한했다. 프랑스에선 파리를 탈출해 시골로 내려간 사람들에게 지역주민들이 “바이러스를 옮기지 말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영국은 전국 각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기업을 향해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길 수 있는 인터넷 정체현상에 대한 예방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EU 집행위는 성명을 통해 “의료보건 서비스, 온라인 교육, 다른 필수 용도 등이 필요한 시기에 비정상적 트래픽 유통 위기가 온라인 인프라를 압박할 수 있다”며 “스트리밍 플랫폼이 동영상을 일시적으로 고화질보다는 표준 화질로 낮춰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옛 소련권 국가들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났다. 이날 처음으로 확진자 3명이 나온 키르기스스탄에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는 러시아 147명, 벨라루스 51명, 카자흐스탄 35명, 우크라이나 14명이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