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강창래(오른쪽)·정혜인 부부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루페 제공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강창래 지음 / 루페

라면밖에는 끓일 줄 몰랐던 인문학자 남편
응급실·수술실·호스피스 오가는 아내 위해
담담하게 재료 구하고 요리법 찾고 먹이고
60가지 투병 음식 만드는 과정 정리해 기록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13자로 된 한 문장으로 대신하고 싶다.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책은 출판기획자 출신의 인문학자인 강창래 씨가 아픈 아내를 위해 만든 음식 이야기다. 독서와 글쓰기가 직업인 책상물림 남편은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아내는 동네 친구였던 동갑내기 정혜인 알마 출판사 전 대표로, 지난해 9월 암 투병 3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병이 깊어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남편이 마음을 다해 만든 음식만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응급실과 병원, 수술실, 호스피스를 오가지만 그는 그런 속에서도 담담하게 재료를 구하고 손질하고, 요리법을 찾고 만들고, 먹이고 때론 같이 먹는다.

힘든 투병과 간병 과정은 좀처럼 잘 드러내지 않고, 간명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담긴 글은 담담하고 또 담담하다. 그래도 말하지 않은 슬픔은 글 밖으로 새어 나와 책을 흠뻑 적시고도 남는다. 그 사이 순간순간 빛나는 일상의 기쁨도 있다.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 아픔을 담은 글에 대한 글을 쓰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의 진심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땐 재주 없음을 인정하고 항복, 글은 접겠으니 그냥 직접 책을 펼쳐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이 그렇다.

책에는 60여 개의 레시피가 수록돼 있다. 정확한 분량을 표시한 그런 레시피가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정리한 기록이다. 처음에는 채소의 이파리, 시금치 또 냉이는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였지만 어느덧 볶음밥, 나물 무침은 기본이고 돔베 국수, 아귀찜, 해삼탕까지 차려 낸다. 상황버섯 우린 물로 잡곡밥을 짓는 고수가 됐고, 스무 가지 넘는 채소를 찜통에 몇 시간씩 고아 채소 수프를 만들고, 몇 번씩 거르며 채소 주스를 내린다. 무염식에 맛을 내기 위해 청양고추를 과도하게 넣는 실험을 벌이기도 한다.

그가 처음에 책을 쓴 이유는 꽤 실용적이었다. 레시피를 보고 간단한 음식을 어찌어찌 만들어도 다시 하려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긴다.

“그즈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라는 영화를 조금 보았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 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된다.”

음식에 깃든 절절함,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같이 먹는 일상이 존재한다는 기쁨과 곧 사라질 일상에 대한 앞선 그리움과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담담하게 전해지는 글은, 우리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 참고로 영양, 면역, 재료 연구 등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음식은 일상의 레시피로 쓰기에도 훌륭하다. 슬픔에 미안할 정도로 맛있어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248쪽, 1만3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