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이현 모어댄 대표가 22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 사무실에서 폐차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지갑을 들어보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친환경 사회적 기업 ‘모어댄’

최이현 대표 “교통사고 폐차 뒤
車 가죽시트 재활용 방안 고민”

전국 폐차장 찾아서 현장 공부
가죽세척·냄새제거 직접 익혀

SK 지원 선정되며 사업 확장
지갑 등 50가지 제품으로 확대

작년 매출 4억원… 4배로 껑충
취약층 경단녀 등 11명 채용도

‘가방이 된 자동차.’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22일 방문했던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새활용플라자 3층 사회적기업 ‘모어댄’ 사무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어댄은 폐자동차에서 수거한 천연가죽을 재활용해 가방과 지갑, 기타 액세서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 이름이 가진 의미도 남다르다. 제품만 파는 게 아니라 구매자에게 환경에 대한 메시지도 전달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마침 사무실엔 노트북 컴퓨터용 백팩과 지갑이 전시돼 있었는데 단순하지만 독특한 디자인이 해외 유명 브랜드 못지않게 고급스러워 보였다. 폐기처분 대상이 어떻게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유명 가수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소장한 가방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미지 크게보기 모어댄 최고 인기 제품인 ‘엘카’ 백팩.

최이현(37) 모어댄 대표는 “영국 유학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 창업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영국에서 사회적 책임(CSR)과 자동차를 주제로 공부하며 교수직을 희망했지만, 현재는 환경보호와 취약계층 고용 등 사회적 가치 실현에 중점을 두는 기업가다. 최 대표는 “정말 아꼈던 차였는데 사고로 인해 폐차해야 할 정도로 파손돼 어쩔 수 없이 가죽시트를 뜯어 왔다”며 “집에 기념으로 남겨 둘 생각이었는데 친구들이 소파로 만들어 쓸 것을 권유하면서 폐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자재 재활용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문제에 대해선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폐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죽과 금속류 등은 정형화된 처리 방법이 없었다”며 “연간 400만t에 이르는 폐자원을 재활용하면 환경도 보호하고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2014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6개월 동안 전국의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현장 공부를 시작했다.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세척, 냄새 제거, 생산 등 창업에 필요한 노하우를 몸소 체득했다. 최 대표는 “그때 기업가로서 기본기를 다졌다”고 회상했다. 수없이 시제품을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2015년 3월 SK이노베이션의 사회적기업 지원 공모사업에 응모하면서 마케터로 직접 나섰다. 당시 최 대표는 폐가죽에 안전벨트 버클을 붙여 만든 가방 시제품을 가지고 SK 관계자들 앞에서 15분 동안 발표했고 “스토리가 있고 환경보호라는 가치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현재 모어댄은 가방과 지갑류 등 50여 가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주재료인 가죽은 폐차장에서 얻고 있다. 기존에는 폐차장들이 별도의 비용을 내고 가죽과 시트 등을 처분했지만, 모어댄에 제공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 폐차장들도 반긴다. 내년에는 재활용 가죽으로 신발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모어댄은 ‘컨티뉴’라는 브랜드 가방을 만들고 있다. 원자재는 무료로 공급받지만 세척에서 왁싱까지 6단계 공정을 거친 후 생산된 가방의 가격은 20만 원에 이른다. 이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엘카’는 주문해서 받기까지 한 달이 걸릴 정도.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인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비결은 품질에 대한 최 대표의 고집에 있었다.

최 대표는 “사회적기업에서 쓰레기로 대충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시트에 사용되는 가죽은 품질과 내구성 면에서 최고인 것을 사용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폐차 가죽으로 만드는 만큼 세척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가죽에 밴 담배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물 세척은 기본이고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자체 개발한 세제를 사용한다. 세척 이후 특수코팅 등 여러 단계를 거쳐 가방을 만들 수 있는 가죽을 만드는 데만 4개월가량이 걸린다. 최 대표는 “제조는 유명 브랜드 출신 장인들이 담당한다”며 “그만큼 원가가 대량 주문생산보다 훨씬 많이 들지만 품질은 업계 최고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모어댄은 제품에 불만이 있는 구매자에겐 무조건 교환해 주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품질에 많은 정성을 쏟은 덕에 반품은 거의 없다고 한다.

모어댄은 ‘컨티뉴’를 앞세워 스타필드 고양점, 교보문고 핫트랙스 등으로 판로를 확장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인 킥스타터를 통해 제품을 선보인 지 2일 만에 2만 달러 이상의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사업 초기 1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억 원으로 4배로 성장했다. 경력단절여성 등 고용 취약계층 11명을 고용하는 등 사회적기업 본연의 역할도 다하고 있다. 최 대표는 “앞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원 재활용과 환경보호의 모범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후배 사회적기업 육성에도 도움을 주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