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경영자총협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던 박상희(왼쪽 세 번째) 대구경총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49회 경총 정기총회에서 회장 선임이 무산되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 경총 총회 파행 막전막후

박상희 신임회장 내정 보도후
‘보이지 않는 손’ 움직인 정황

정부정책 반기 김영배 타깃
여권, 새회장 추대 압박 의혹

회장·부회장 초유 동시공백
민간단체에 정치 개입 파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여권의 실세 의원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회장 선임에 실패하고 사상 초유의 회장·상임부회장 동시 공백 사태를 맞게 된 이면에 정부와 여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됐던 것으로 확인될 경우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경제계는 이번 사태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강하게 반발해 온 김영배 상임부회장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막장 드라마’라고 비난하고 있다.

22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49회 경총 정기총회에서는 하루 전 차기 경총 회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던 박상희 대구경총 회장 선임이 무산됐고, 결국 새 회장 선출에 실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초 경총 회장은 기업을 대변해 노동계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자리인 탓에 경제단체장 중에서도 가장 인기 없는 자리로 꼽혔다. 후임 회장을 구하지 못해 연임하거나 삼고초려 끝에 비기업인 출신 인사를 모셔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날 물러난 박병원 회장 역시 본인의 고사에도 얼마 전까지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연임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박상희 회장이 차기 회장을 맡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주요 그룹 측 인사들의 반대로 선출되지 못했다.

경총 회장 선임이 복잡해진 것은 여권이 회장 교체를 통해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계속 반기를 드는 김 상임부회장을 용퇴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외부적으로는 여권의 실세 H 의원이 나섰지만 그 배후에는 훨씬 위쪽에서 정부 차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주요 그룹은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들은 ‘저쪽’의 관심의 초점이 차기 경총 회장은 덕망 있고 원만한 분을 모시되, 그를 통해 새 정부 일자리정책에 강하게 반발해왔던 김 상임부회장을 아웃시키는 데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경총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막후에선 긴박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초 H 의원은 경총 회장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요 그룹 관계자들을 만나 ‘경총 회장 손경식-부회장 최영기’ 카드를 관철시키는 데 협조를 구해 그 수순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19일 비공식 회장단 오찬에 모인 일부 부회장 및 지방 경총 회장 등이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 박상희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자는 의견을 냈고, 20일 언론 보도까지 이뤄졌다. 더욱이 박상희 회장은 차기 회장이 되면 김 상임부회장을 유임시키겠다는 의사까지 밝히면서 사정은 더욱 급박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 부회장들이 모두 22일 경총 총회에 참석해 박상희 카드를 무산시켜야 한다며 21일 오후 내내 H 의원이 급박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대기업에 연락을 돌려 정기총회 참석을 강권했고 결국 다음 날 주요 그룹 측 인사들의 반대로 박상희 회장 선임이 무산됐다. 당장 후임 회장을 선임하지 않고 새 전형위원회를 꾸려 추후 결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부회장 16명 중 유일하게 김 상임부회장만 재선임되지 못해 사임했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