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회의를 열고 렉스 틸러슨(왼쪽) 국무장관 등 참석자들에게 발언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美, 9년만에 재지정 배경

“오래전에 했어야 할 조치”
강력제재 지속 의지 재천명

‘외교해법’ 가능성도 열어놔
‘비핵화냐 枯死냐 선택’ 통첩

‘中 빈손訪北에 발표’ 분석도
‘제재구멍’ 中 등에 경고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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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이라는 ‘칼’을 9년 만에 꺼내 들었다. 최대의 대북압박·제재를 통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여서 ‘비핵화냐, 아니면 고사(枯死)냐’를 선택하라는 통첩을 날린 셈이다. 대북 제재 ‘루프홀(구멍)’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중국 등 제3국에 대해서도 대북 교역을 중단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올해 2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과 지난 6월 북한에 억류됐다가 송환된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각료회의에서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하면서 “북한은 외국 영토에서의 암살 등을 포함한 국제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동을 되풀이해 왔고, 오늘 이 조치를 하면서 우리는 멋진 젊은이였던 오토 웜비어와 북한의 탄압에 의해 잔인한 일을 겪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브리핑에서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 암살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게 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14일 아시아 순방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한반도 비핵화 추구”라면서 이번 조치가 ‘최대의 압박’ 대북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대북 제재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대북 제재의 ‘구멍’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방식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협상 복귀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을 재확인하면서 강력한 제재·압박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틸러슨 장관이 이날 북핵 문제에서 “여전히 외교를 희망한다”면서도 “북한에서 심각한 연료 부족과 현금수입 감소를 알고 있으며,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북한이 궤도와 경로를 바꾸게 하는 임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니얼 러셀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도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상징성 있는 강력한 조치”라고 높게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북 ‘매파’ 성향이 강한 의회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김정남 암살과 웜비어 사건은 북한의 지속적인 테러 패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이번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환영했고, 코리 가드너(공화·콜로라도) 상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 등 10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환영 성명을 냈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날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국무부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던 상황에서 데드라인이 설정돼 있는 미국 법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가 정한 데드라인인 지난 2일이 아닌 이날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테러지원국 재지정 방침을 아시아 순방 이전에 이미 결정했지만 ‘중국 변수’를 기다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의 17∼20일 북한 방문이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불러오는 성과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자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