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확대 우려 ‘선긋기’

청와대가 초대기업·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방침을 사실상 선언하고도 단계적 (추가)·대규모 증세 논란을 우려해 적극적인 재정개혁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인세·소득세 최고 구간 신설을 공식화하면서도 “서민 증세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은 자구 노력 없이 세금만 늘린다는 비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추가 증세에 선을 긋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문 대통령이 5년 내내 서민 증세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앞으로 증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역시도 과세 대상이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현재 입장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확실한 재원 마련을 위해 조세 저항까지는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세금을 직접 사용할 정부가 여당보다도 증세에 더 소극적인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합부동산세 등의 확대 과세로 큰 정치적 어려움에 빠졌던 사례 등을 감안한 전략적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문 대통령도 증세에 적극적인 태도는 안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 국가재정 전략회의 첫날 회의를 마친 뒤 문 대통령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한 증세에 대해 “우선 재정 전략을 잘 짜보고 2단계로 고민해 볼 문제”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전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반드시 강도 높은 재정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며 “현재의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으로 여권과 진보 진영 등에서는 추가적인 증세를 더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3조∼4조 원 증세가 아니라 대대적인 증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이 이미 국회에 제출한 법안에는 과세 표준 ‘500억 원 초과’ 기업에도 25% 세율(현재 22%)을 적용하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청와대가 현재는 부인하고 있지만, 결국 단계적인 증세를 추진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이번 증세도 서로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이라며 “수년 전부터 보편적 복지와 증세를 당에서 얘기했는데 복지국가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집권했다고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