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장소 내주고 시점 얻어

“블랙리스트, 수사대상 맞다”
법원, 김기춘 이의신청 기각

3일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시선은 이미 다음 주 9일 전후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로 향해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범죄 자료를 광범위하게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건의 ‘정점’인 박 대통령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면조사가 그의 범죄 혐의를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절차’라는 판단 때문이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앞서 진행되는 ‘절차적 관문’ 성격이 있는 것이다.

특검 관계자는 “대통령 대면조사가 9일 전후로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면조사 장소는 청와대 위민관 등 경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초 조사 시점이 이달 중순으로 밀릴 가능성이 감지됐지만, 특검팀이 원한 2월 둘째 주로 조사 시점이 잠정 확정된 것도 특검팀이 ‘장소’를 양보하고 원하는 ‘시점’을 얻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외부에서 조사할 경우 불거지는 대통령 경호 문제도 고려한 결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대면조사에서 ‘모르는 일’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답변이나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소극적 답변이 예상돼도 조사 자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범죄혐의를 완성하기 위한 두 개의 축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삼성의 뇌물공여 혐의 완성을 위해서는 뇌물수수 혐의가 적시된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특검팀은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에도 박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또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사유 중 하나인 문화예술계 인사 1만 명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지시·관여가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다른 탄핵소추 사유인 ‘비선 진료 의혹’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도 집중 추궁 대상이다. 이에 더해 정부·대기업·금융회사 등을 가리지 않고 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 최순실 씨의 ‘인사 농단’에 박 대통령의 조력이 있었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이날 특검팀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공정위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 특혜법’으로 지목된 중간금융지주회사법 입법·통과 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고, 금융위에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외환 거래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황한식)는 ‘블랙리스트 의혹은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의신청에 대해 “김 씨의 범죄사실은 특검법에 열거된 일부 의혹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것으로, 합리적 관련성이 있다”고 밝히며 기각했다.

손기은·김만용·이후연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