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지난해 5월 14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평의회에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다. AP 연합뉴스

FIFA - ECA, 월드컵 출전국가 확대 놓고 정면 충돌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클럽협회(ECA)는 축구를 움직이는 두 축이다. FIFA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육상연맹(IAAF)과 함께 세계 3대 체육기구로 불린다.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비롯해 세계청소년선수권 등 9개 국제축구대회를 주관한다. 2017년 1월 현재 FIFA 회원국은 211개국으로, 유엔 가입국(193개국)보다 많다.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 정치적인 이유로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 신생국가나 독립을 꾀하는 지역까지 모두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크림반도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을 러시아 리그에 흡수하려 했으나 FIFA에 의해 제지당했다. 강대국마저 FIFA의 눈치를 봐야 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FIFA는 각국 축구협회를 거느리고 있기에 축구의 최상위 조직이다.

그런데 2008년 FIFA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ECA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ECA는 European Club Association의 약자이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 각국 리그에 속해 있는 220개 구단으로 구성된 연합체다. FC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 명문 구단 대부분이 ECA 깃발 아래 뭉쳤다.

ECA는 FIFA, 그리고 FIFA 산하이지만 FIFA에 버금가는 파워를 지닌 유럽축구연맹(UEFA)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ECA가 유럽클럽, 즉 유럽 축구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결성됐기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단들은 FIFA와 UEFA에 대한 불만이 높다. 선수 차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선수에게 연봉(주급)을 지급하는 건 축구단이다. 그런데 FIFA는 A매치에 선수를 차출한다. FIFA, 그리고 FIFA 산하의 대륙별연맹이 ‘공짜’로 선수를 데려가 A매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걸 특히 유럽 각국의 축구단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축구클럽은 A매치에서 선수가 부상을 당했을 경우, 금전적인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UEFA 등 대륙별연맹은 대륙별로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해 월드컵처럼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둔다. UEFA는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의 출전 수당, 성적에 따른 상금을 참가한 축구단에 배분하지만 주최, 운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을’에 해당하는 유럽 축구단이 모인 이익단체가 바로 ECA다. ECA가 궁극적으로 유럽의 슈퍼리그 출범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건 FIFA와 UEFA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뜻이다. 유럽 대부분의 축구단이 출전하는 슈퍼리그를 독자적으로 운영한다면 축구단의 이익은 훨씬 커진다.

FIFA와 ECA는 사사건건 마찰음을 빚었고, 최근엔 정면으로 충돌했다. FIFA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평의회에서 2026년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한다고 결정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월드컵 본선 진출국 확대 이유로 “다양한 국가에 월드컵 출전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구 약소국’에 월드컵 본선 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축구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프랑스에서 개최된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 2016은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출전 국가 수를 확대했다. 이로 인해 웨일스, 아이슬란드 등 유로 본선에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팀들이 본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FIFA는 유로를 예로 들면서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가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ECA는 월드컵 본선 출전국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본선 참가국이 늘어나면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국가대표 차출 또한 늘어나기 때문이다.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 ECA 회장은 “유럽 프로축구리그의 일정은 이미 선수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FIFA가 월드컵 출전국을 확대하면 선수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밝혔다. ECA는 또한 출전국 확대는 월드컵 본선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양 측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명분은 명분일 뿐, FIFA와 ECA가 노리는 건 돈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2018 러시아월드컵(32개국 출전)의 예상 수입은 55억 달러(약 6조6000억 원)지만 출전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 최대 65억 달러(7조8000억 원)까지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FIFA는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선 출전국 수가 증가하면 전체 경기 수도 함께 늘어난다. 32개국 체제에선 64경기가 열리지만 48개국 체제가 되면 80게임이 열리게 된다. 월드컵 본선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나라들이 본선에 오를 경우,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를 통해 중계권료 수입 등도 덩달아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출전국 확대로 인해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게 되면 수입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루메니게 회장이 “정치와 상업적인 가치가 축구 본질에 앞설 수는 없다”며 “우리는 스포츠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다.

그러나 ECA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월드컵 수익 배분금 인상이란 분석이다. 본선 진출국과 경기 수 증가로 선수의 ‘노동’이 늘어나니, 축구단에 지급하는 월드컵 지원금도 늘어나야 한다는 게 ECA의 ‘계산’이다. 실제로 ECA는 2022 카타르월드컵 겨울 개최에 격렬하게 ‘항거’한 끝에 엄청난 소득을 올렸다. FIFA는 지난 2015년 카타르월드컵의 11월 개최를 확정했지만, ECA는 카타르 보이콧까지 검토하면서 FIFA를 압박했다. 겨울에 월드컵이 열리면 겨울에 운영되는 유럽 리그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CA의 ‘배수의 진’에 FIFA는 두 손을 들었다. FIFA는 월드컵에 선수를 파견하는 축구단에 주는 지원금 액수를 크게 높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ECA에 7000만 달러(820억 원)를 지급했으나, 2018 러시아월드컵과 카타르월드컵에선 2억900만 달러(2450억 원)씩 주기로 해 ECA의 반발을 무마했다. 이번에도 FIFA가 수익금 배분액 증가라는 당근으로 ECA를 달랠 것으로 내다보인다.

FIFA와 ECA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 재현될 소지가 높다. ECA가 슈퍼리그 출범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 유럽의 명문구단들이 자체적으로 슈퍼리그를 창설하게 되면 명문 구단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한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특히 축구단이 슈퍼리그를 직접 운영하게 되면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다. FIFA와 UEFA는 명문 구단이 참가하는 슈퍼리그가 생기면 명문 구단과 중·소 구단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고, 각국 리그의 인기가 하락할 수 있다며 슈퍼리그 출범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명분일 뿐, FIFA와 UEFA는 슈퍼리그가 월드컵, 챔피언스리그의 경쟁자가 되고 이로 인해 월드컵, 챔피언스리그의 희소가치가 사라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게다가 슈퍼리그로 인해 ECA의 덩치가 커지면 FIFA가 쥐고 있는 세계 축구 행정력마저 흔들리게 되고, FIFA의 권위는 추락하게 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 유럽클럽협회(ECA) 회장이 지난해 9월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