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하인츠 루메니게(62) 유럽클럽협회(ECA) 회장은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독일(서독)의 스트라이커였다. 강력한 슈팅, 동물적인 골 감각을 지닌 루메니게는 서독 국가대표로 A매치 95경기에 출장해 45골을 넣었다. 당시 최고의 골잡이였던 루메니게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 1980에서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 1982 스페인, 1986 멕시코월드컵 준우승을 견인했다. 루메니게는 1980년과 1981년 축구선수 최고의 영예인 발롱도르를 거푸 품에 안았다.

루메니게는 1974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구단 바이에른 뮌헨에서 310게임에 출전해 162골을 넣었다. 1989년 은퇴한 뒤 2002년 친정인 바이에른 뮌헨 회장직을 맡아 본격적으로 축구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유럽 구단들의 모임인 ECA 창설에 앞장서 초대 회장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ECA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루메니게는 축구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보냈고,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면서도 단 한 번도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셸 플라티니(62·프랑스)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프란츠 베켄바워(72·독일) 전 독일월드컵조직위원장 등 월드스타 출신 축구 행정가들이 각종 비리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플라니티 전 회장은 2011년 당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으로부터 200만 스위스프랑(약 23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자격정지 6년 징계를 받고 사실상 ‘퇴출’됐다. 베켄바워 전 위원장은 2006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FIFA 집행위원들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로 현재까지 조사를 받고 있다.

플라티니 전 회장, 베켄바워 전 위원장이 FIFA 회장 물망에 올랐기에 최근 목소리를 높이며 FIFA에 반발하는 루메니게 회장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선수로서, 스포츠 행정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아니 뛰어난 수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루메니게 회장의 급부상을 가장 경계하는 건 잔니 인판티노(47) FIFA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2월 FIFA 스캔들로 인해 쫓겨난 블라터 전 회장을 대신해 선출됐다. 인판티노 회장은 변호사 출신이지만, UEFA 법률 담당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6년 유령 회사(페이퍼컴퍼니)인 크로스 트레이딩으로 챔피언스리그 중계권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루메니게 회장은 과거 블라터 회장이 ‘철권’을 휘두르던 시절, “블라터는 미꾸라지이고 FIFA는 정치적인 집단”이라고 말하는 등 줄곧 FIFA를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루메니게 회장은 FIFA에 대한 반감이 크고, 세계 최고의 무대인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에게 루메니게 회장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인판티노 회장은 루메니게 회장이 자신의 입지를 흔들 수도 있고, 또 ECA가 FIFA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