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이크 잡고 “투표 중단
클린턴 대선후보로 지명하자”
단합외치며 역사적 순간 장식
공화당 크루즈와 대조적 행보

“투표 절차를 중단하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자고 제안합니다.”

지난 2월 개시한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겨뤘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6일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면서 역사상 최초의 주요 정당 여성 후보 지명을 함께 축하했다.

8년 전인 2008년 전당대회에서 경선 결과에 승복,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던 클린턴 전 장관의 행보가 그대로 재연된 셈이었다. 샌더스 의원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항하는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단합이 우선한다는 명분에 동참, 영예로운 퇴장을 선택했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오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농구경기장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56개 주·지역별 호명투표인 ‘롤 콜(roll call)’ 마지막 순서에 고향인 버몬트주를 대표해 등장한 뒤 “전당대회 절차 규정에 관한 투표를 중단하고 클린턴 전 장관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하자고 제안한다”고 밝혔다.

사회자도 “샌더스 의원이 당의 단합을 위해 규정에 따라 투표 중단에 합의했다”면서 클린턴 전 장관이 민주당 대선후보에 지명됐다고 발표했다. ‘롤 콜’이 시작된 지 1시간 15분 만이었다. 대의원들은 ‘힐러리’를 연호하기 시작했고, 이어 ‘단합(Unity)’을 외치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클린턴 전 장관이 역사를 만드는 순간에 한때 정적이었던 샌더스 의원이 대미를 장식해준 셈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후보지명 직후 곧바로 트위터에 샌더스 의원의 발언이 담긴 영상과 ‘함께 더 강하게(Stronger together)’라는 대선 슬로건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샌더스 의원에게 고마움과 함께 연대의 정신으로 화답했다.

이 순간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패자가 승자를 대선후보로 지명하던 때와 그대로 닮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은 패자의 처지에서 버락 오바마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날은 자신에게 패배한 샌더스 의원으로부터 같은 형식의 승리 인정 선언을 받은 것이다. 2008년 상황 가운데 올해와 달랐던 점은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은 자신이 속했던 뉴욕주의 경선결과 발표 차례가 돌아오자 대회장 밖에서 걸어들어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당시 “우리의 당과 국가에 대한 믿음을 담아 한목소리로 지금 여기서 버락 오바마가 후보가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임을 다 함께 선언하자”고 연설한 뒤, 이날 샌더스가 했던 것과 같은 선언을 했다.

지난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경선 2위였던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이 “내 아내와 가족을 모욕했다”면서 끝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샌더스 의원은 전당대회 첫날인 25일에도 마지막 연설자로 무대에 등장한 뒤 “클린턴이 반드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면서 화끈한 지지를 보냈다. 샌더스 의원은 30분에 걸친 연설에서 “많은 사람이 경선 결과에 실망한 것을 이해하지만, 나보다 더 실망한 사람은 없다”면서 “객관적인 관찰자라면 클린턴의 사고와 지도력에 근거해 그녀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결론 낼 것”이라면서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한편 2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샌더스 지지자들은 이날 클린턴 전 장관이 공식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장내·외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지도부가 앞선 경선 과정을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불리하게 관리했다는 이메일 폭로에도 불구, 샌더스 상원의원은 클린턴 전 장관 지지 선언을 철회하지 않았지만 수천 명의 샌더스 지지자들은 전당대회 장소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거리에서도 항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버니 (샌더스) 아니면 파열(Bernie or bust)’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주당을 탈당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