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식품 안전사고 및 범죄 근절을 위해 식품제조 관리체계 보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청 관계자들이 급식실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유통기한 1년 지난 수입 젤리
학교앞 문방구서 버젓이 판매

식품제조업체 5만4000곳 중
92%가 10人이하 영세사업자
“위생 사각지대… 단속 못미쳐”

서울 도봉구 창동에 사는 주부 김모(41) 씨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젤리 포장지를 무심코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인도네시아산 젤리의 유통기한이 ‘2014년 4월’로 1년 이상이나 지났는데 버젓이 팔리고 있었던 것. 김 씨는 “유통기한이 이토록 지난 제품이 아이들 군것질용으로 팔리는 것은 어른들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단속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나모(34) 씨도 대형 1000원 숍에 갔다가 수입식품 원산지를 가격표로 교묘히 가린 제품을 보곤 신뢰감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 위반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의 유통기한을 변조하고 편의점, 학교 매점, 고속도로 휴게소 등 다중 집합 장소에 납품한 식품제조 및 가공업체 5곳을 적발했다.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은 식품을 팔기 위해 보관한 또 다른 업체 1곳도 덜미를 잡았다.

서울 금천구의 C푸드는 지난 2013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4억9000만 원 상당의 23개 품목의 유통기한을 바꿔 대학 매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등에 납품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영향으로 어린아이들에까지 점심 대용으로 많이 팔리는 삼각김밥은 통상 유통기한이 제조시간으로부터 36∼48시간인데 유통기한을 바꿔 판 것이다.

최근 식중독 사고가 여름 등 특정 기간에 머물지 않는 데다, 즉석섭취식품의 경우 유통기한을 조금만 넘겨도 쉽게 부패·변질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데도 불구, 근절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모(17) 군은 지난해 5월에 삼각김밥을 사 먹은 후 식중독에 의한 위장염으로 복통, 설사를 하다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신모(35) 씨도 지난해 9월에 유통기한이 2015년까지로 표시된 통조림 햄을 구매해 개봉했는데 밑 부분이 까맣게 썩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했다.

부패·변질되거나 식중독과 관련된 식품 관련 위해 사례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4대 사회악’의 하나로 불량식품과 식품범죄를 규정하고 올해 연말까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합동단속을 펴기로 한 것도 전문적이고 상습적, 지능적인 부정·위해 식품제조와 허술한 관리, 유통 행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 위해 감시시스템(CISS)에 들어온 부패·변질, 식중독 관련 식품 위해정보는 2469건, 식중독 사고는 1959건으로 집계됐다. 각 연평균 823건, 653건에 달한다. 올해 들어 1∼6월에도 식중독 위해증상은 153건이 접수됐다.

주로 어패류·어패류 가공식품, 육류·육류 가공식품, 건강식품, 빵·과자류, 곡류·곡류 가공식품, 음료, 과일·과일 가공식품에서 빈발한다. 이런 식품을 섭취한 후에는 설사, 복통, 구토 등의 위·장 관련 질환이나 호흡기 이상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사례가 많았다.

식품안전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식품 수입규모가 2012년 기준으로 15조4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수입되고 있는 데다, 1∼2인 가구의 증가 및 외식, 단체 급식의 급증, 5만4000여 개에 달하는 식품제조업체 가운데 10인 이하 영세 사업체 비중이 92%에 달하는 데서 알 수 있는 안전사각지대의 존재 등이 꼽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00명을 대상으로 식품안전과 식품위해사범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식품안전에 대한 형사정책적 방안 연구’)를 보면, 식품안전 부문에서 불안해하는 요소로는 원산지가 30%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가공식품(23.5%), 화학첨가물(18.5%), 식품판매 및 제조업체의 위생상태(15.8%), 유통기한 및 제조 일자(15.5%), 유해물질(14.9%), 외식 및 길거리 음식(10.7%) 순으로 뒤를 이었다.

유경모 한국생명과학회 부회장은 ‘최근 식품 사고의 발생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불량식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제조업자의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란 답이 51.1%, ‘식품제조·영업자의 식품안전의식 부족’이 21.7%, ‘불량식품 판매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15.1%로 파악됐다”고 소비자가 느끼는 식품 안전체감도의 현주소를 제시했다.

소규모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서울 노원구의 한모(46) 씨는 “식당이 영세하다 보니 스스로 위생관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고 투자 역시 부족했다”며 “영세 식당의 주방 운영 실태를 보면 음식 먹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8일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육계제품 유통 실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계장, 대형유통점, 재래시장 판매업소 등 1231곳의 유통경로 가운데 313곳, 25.4%에서 법적 규정온도를 위반하는 등 냉장유통 관리가 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식품안전은 국가의 책무”라며 “제조에서 유통, 판매 등 전 단계에 걸친 감시제도 확립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