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국가화 추진 위해서도 과거사 무시가 필수전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과거사 사죄를 거부한 데 이어 23일 내각 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까지 허용하면서 ‘한국 무시’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부가 노광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깊은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강력 비난한 지 하루 만이다.

미국·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고 한국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다. 일본이 중국에 비교적 공손하게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다르다. 이날 야마타니 에리코(山谷えり子) 국가공안위원장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연례적인 일본정부의 행사로 격상됐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전날 일본 국회의원들의 집단 참배에 이어, 내각 인사까지 참여를 공식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본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펴고 있는 한국 무시 전략의 연장선이다.

이면에는 아베 총리의 노림수와 저의가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3위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자부심의 배경이다. ‘일본=강대국, 한국=중견국’이라는 인식이 일본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아베 총리가 교묘하게 이런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에 비해 과거 10대 1에서 5대 1로 좁혀진 데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일종의 견제 심리인 셈이다. 한국이 급성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일본에 과거사 사과를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베 총리는 내심 ‘한국이 국력도 없으면서 함부로 대든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일본에서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본의 국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발언을 꼽는 것은 이 같은 상처받은 자존심의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는 또 ‘경제 살리기’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 상황에서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일본 내 혐한 감정을 악용하고 있다. 국내정치용의 성격도 있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가 6년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이후 처음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한 비결이기도 하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이 2월 말 한·중을 겨냥해 “민족적 감정은 악용될 수 있고 정치인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인물은 아베 총리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보통국가화’를 위해서도 과거사 무시는 필수다. 동북아의 현상유지 질서를 깨고 일본을 패권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사와 결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