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소비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현장에서 전혀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정책당국이 심각한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가계 빚이 많다 보니 쓸 돈이 없고, 그나마 소비여력이 있는 가구는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은행 등에 쌓아두는 사람이 늘면서 소비가 위축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꾸려진 최경환 경제팀이 각종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낮추며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민간소비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그간 확장적 정책기조 등으로 경제회복의 불씨는 살렸지만 소비·수출 등으로 개선세가 확산되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현 경제상황을 진단했다.

실제로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6월 전월대비 -0.2%, 11월 -2.1%에서 올 1월 -3.1%까지 하락폭을 키우는 모양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낳고 있지만, 저물가가 정작 소비확대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민간소비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가계부채가 이미 1100조 원대에 육박하며 돈을 쓸 여력이 없는 가계가 많은 데다 고령화, 경기침체에 따른 불확실성 확산 등으로 지갑을 닫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가계소득은 430만2000원으로 전년대비 3.4% 늘었지만, 소비지출은 255만1000원으로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비증가가 소득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소득대비 소비지출 비율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도 72.9%로 2003년 통계작성 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91조7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조3000억 원이나 늘었다. 소비여력이 있어도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세금, 연금 등 반드시 내야 하는 부문의 지출이 늘어나면서 소비 여력이 떨어지고 있고,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늘리지 않으려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높여 교육, 관광, 문화와 관련한 해외소비를 국내 소비로 전환시키고, 기업투자 활성화로 일자리를 늘려 전체 국민소득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