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으로 파견근로를 나간 근로자들이 모두 대기업 정규직으로 인정받는다면 하도급 물량을 소화하는 중소기업들은 존재 가치가 있겠습니까?”(A 중소기업 대표)

“지금도 중소기업들은 정규직 인력을 구하기가 힘든데,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 원청 대기업의 정규직이 되면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은 불을 보듯 뻔해져 더 심화될 겁니다.”(B 중소기업 대표)

지난 9월 사법부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중소기업계에서 중소기업의 만성적인 인력난을 더 악화시키고 기업 존재 가치마저 훼손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세 제조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23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대기업 사내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 근로자로 오인받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대기업과 독립된 중소기업의 정규직이어서, 원청 대기업이 하도급 중소기업의 고용과 임금에 관여하게 될 경우 중소기업의 존재의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3개월째 제조분야에서 일할 정규직 근로자를 찾고 있다는 B 중소기업 대표도 “대기업에 파견돼 일하는 근로자가 모두 대기업 소속 근로자가 된다면 누가 중소기업에 들어와 일을 하겠느냐”며 “이번 사내하도급 판결로 결국 대기업으로의 인력 쏠림 현상만 가속화되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C 중소기업 대표도 “이번 판결로 대기업들이 사내하도급 일감을 줄여버리면 하도급 물량을 소화하던 중소기업들의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수의 중소기업도 “사내하도급 사용 제한이 일자리를 줄이거나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종업원 100명 이상의 제조업체 309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내하도급 사용을 제한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답한 기업이 전체의 84.5%나 될 정도로 중소기업 가운데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사내하도급을 사용하는 이유(복수응답)로는 인건비 등 경비 절감(60.5%), 인력운용 유연성 확보(36.6%), 보조·부수적 업무(35.6%) 등을 꼽았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