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가 24일 오전 전격 사퇴한 이유는 총리 취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터에 자신의 거취 논란이 국정 파행 장기화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총리 지명 직후 ‘친일파’ ‘매국노’로까지 매도됐던 것과 달리 자신의 자질 논란의 시발점이 됐던 KBS 보도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일부 명예회복 토대가 마련된 것도 그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로 분석된다. 특히 국가보훈처가 문 전 지명자의 조부 문남규 선생이 독립유공자임을 확인한 게 문 전 지명자가 ‘마지막 결심’을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오전 10시 전격적인 사퇴 발표를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나타난 문 전 지명자의 표정은 착잡함과 아쉬움, 분노 등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지난 10일 총리로 지명된 뒤 끊임없이 사퇴 압박에 시달린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회견이 시작되자 문 전 지명자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격정적인 어조로 쏟아냈다. 특히 국회의 인사검증 방식, 언론의 보도 양태 등에 대해 비판할 때에는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지고 떨렸다. 회견 말미 총리 지명자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힐 때에는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이날 회견에서 문 전 지명자가 밝힌 직접적인 사퇴 이유는 총리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데다 자신의 거취 논란이 지속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여당 내에서도 그의 사퇴 요구가 잇따르면서 설사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더라도 그의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는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겠다는 말씀에 공감했고,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겠다는 말씀에 저도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다”며 애초에 총리 지명을 수락한 이유를 설명했다. 문 전 지명자는 그러나 자신이 총리 지명을 받은 뒤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며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총리 지명 후 벌어진 대립과 분열 상황이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문 전 지명자는 이어 “저를 이 자리에 불러준 이도 그분이고 저를 거두어줄 수 있는 이도 그분”이라고 말한 직후 “지금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 신자인 문 전 지명자가 듣는 사람에게 ‘그분’(하나님)과 박 대통령을 함께 연상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의지에 반해 물러나는 듯한 묘한 뉘앙스를 담은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문 전 지명자의 명예가 일부 회복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도 확고부동해 보였던 그의 마음을 돌린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가보훈처는 전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문의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의 독립유공자 관련 사항에 대해 확인한 결과, 독립유공자 문남규(文南奎)와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가 동일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친일파’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문 전 지명자로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이다. 문 전 지명자는 이날 회견에서도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로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오남석·정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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