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청와대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가 24일 전격 사퇴하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침묵을 유지한 이유는 그의 거취 논란이 원만히 해결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문 전 지명자를 압박하거나 지명을 철회하는 모양새를 취할 경우 문 전 지명자는 물론 정권에 미칠 상처도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비록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무책임하게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침묵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 결국은 문 전 지명자가 스스로 판단해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가장 원만한 사태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무위를 통한 작위’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지난 21일 밤 중앙아시아 3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23일까지 3일 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박 대통령이 순방 중이던 지난 18일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귀국 후 문 전 지명자 거취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귀국 즉시 사태 정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24일 국무회의 등을 직접 주재하지 않으면서까지 공개적인 발언이나 행보를 최소화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문 전 지명자의 설득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최대한 예우를 갖춰 문 전 지명자를 퇴장시키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악화된 여론을 감안할 때 문 전 지명자가 총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해졌지만,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가장 신속한 해법이었을지 모를 ‘지명 철회’ 카드를 쓰지 않은 것도 문 전 지명자가 홀로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조용한 행보에는 자칫 문 전 지명자와 충돌하는 모양새로 갈 경우의 정치적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침묵과 조용한 행보가 박 대통령에게도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인사검증 책임론’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안대희 전 총리 지명자에 이어 문 전 지명자까지 낙마하는 바람에 김 실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런 와중에 문 전 지명자와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충돌하거나 일방적으로 그의 지명을 철회하는 상황까지 갔다면 박 대통령으로서도 김 실장에 대한 경질 요구를 마냥 무시하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