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상황을 맞아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로 경영안정에 힘을 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의 ‘건강변수’가 경영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로 인해 정상적 경영활동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12일 오전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는 팀장급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 일부 인사들만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과 서초동 사옥을 오갔을 뿐, 대부분 팀장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를 지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당초 예정된 업무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몸이 불편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뿐이고, 그룹 경영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서 “외부에서 보면 ‘초긴장 상태’ ‘비상경영’ 등의 표현을 쓸 수 있겠지만 실제적으로는 비상대책회의도 한 번 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력계열사 삼성전자 관계자도 “이 회장은 큰 그림만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고를 받거나 결재하지 않는 자율경영 시스템이 오랫동안 지속돼왔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경영공백’이라고 표현하는 건 난센스”라고 단언했다.

삼성그룹 내부에선 이 회장의 입원 후 변화를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재계는 이 회장의 건강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만큼 경영전반의 현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주시하고 있다. 이 회장이 지난 4월 17일 해외에서 귀국해 출근을 재개한 이후 진행해온 ‘마하경영’과 사업조정 등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래전략실 개편을 통한 ‘마하경영’, 삼성 비금융계열사의 삼성생명 보유 지분 정리, 삼성SDS의 연내 상장 추진 등 굵직굵직한 결정을 내리며 그룹 전반의 경영혁신과 미래 먹거리 찾기를 실행했던 만큼 당초 예정된 ‘시간표’가 더 빨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건강문제가 불거졌다고 해서 기왕에 계획된 사업조정 계획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하는 것은 삼성의 스타일이 아니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계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조정이 경영승계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으로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4차례에 걸쳐 사업부문과 지분을 단순화하는 사업조정을 진행한 데에는 경영승계를 위한 사전정지 차원의 포석도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계는 이 회장의 입원이 삼성그룹의 경영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수준의 기업집단에서 무리없이 사업조정이 이뤄져야 우리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