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난 것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가 13일 “북한이 ‘존엄모독, 언론의 비방중상 금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밝힌 것은 현재 북한이 처한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북은 ‘호환마마’보다 남쪽의 대북선전이나 심리전, 남측 언론의 북 체제 비판을 훨씬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루 전 고위급 접촉을 하고 돌아온 남 측 대표단으로부터 경과보고를 받은 정부 내 복수의 관계자들이 “북이 소위 ‘최고존엄 모독’이나 (남 측) 언론의 북한 체제 비방중상에 대해 얼마나 크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한 것에서 분명해진다. 즉 북한은 남 측에 의한 대북선전이나 심리전이 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의식을 변화시켜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북 고위급 접촉이 ‘빈손’으로 끝난 데에는 북한이 들고 나온 상호비방 중단 문제가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노골적으로 남한의 언론, 특히 ‘보수언론에 대한 통제’를 남 측 대표단에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 측이 이 문제에 집착한 이유는 남한 언론을 북한 주민 동요를 일으키는 체제 위협 수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북한 정권은 남 측 언론을 정부 대북심리전의 주요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지난 1월 북한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 3개항 중 제1항으로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하자고 제의했던 것에서 감지된다. 북한이 대화의 파트너로 청와대를 지목해 접촉을 제안하면서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거론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유일영도체계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김정은=최고존엄’에 대한 사수가 제일 큰 당면과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 측은 이번 접촉에서 남한 언론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들먹이며 그 보도 행태를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 6일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에서 “우리의 최고존엄을 악랄하게 헐뜯고 우리의 체제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방중상이 계속되는 한 이룩된 합의의 이행을 고려(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른 시기에 남한 언론에 대한 직접 위협을 감행해 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