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엔저 현상이 내년까지 장기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 수출기업들이 비상 경영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 회복 조짐 등으로 내년에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던 기업들은 엔저 직격탄에 대비해 주요 시장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품질 경쟁력 향상 방안을 준비하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 달러와 달리 일본 엔화는 기업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어 속만 태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시장 모니터링 시스템을 풀가동해 일본 경쟁업체의 마케팅 전략을 파악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엔저를 등에 업고 판매가격을 인하할 경우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본 브랜드들이 공세적인 판매 전략을 구사할 것에 대비해 시장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현지 맞춤형 대응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일본 업체들이 대대적인 가격 할인 전략을 쓸 경우 감당해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달러는 결제 다변화나 환 헤지(위험 분산) 등을 동원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엔화는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의 60%를 현지 생산하는 등 환율 위험에 대비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월까지 미국 판매량이 전년동기 대비 2.0% 밖에 증가하지 않는 등 엔저를 이용한 일본업체와 힘든 싸움을 벌여왔다. 일본업체 대부분은 같은 기간 전년동기 대비 10% 가량 미국 판매량이 증가했다.

세계 경기침체로 몇 년째 고전중인 철강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출경쟁력 하락만큼 현지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원론적인 대책 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금의 엔저 현상은 일본판 양적 완화 정책”이라며 “해외 생산기지와 영업망을 강화하고, 품질 경쟁력을 높여 낮은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일본 업체와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도 원·달러 환율을 당초 예상보다 낮춰 잡는 등 환율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거시 경제정책 차원에서 엔저를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엔저 장기화에 대비한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기업들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유병권·강승현 기자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