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의 짧은 만남은 첨예한 동북아 정세 및 한·미·일 3각 구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 및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절실함이 담겨 있고, 거꾸로 한국에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 추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맞물려 ‘딜레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30일 헤이글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일본의 몰역사적 행태가 3각 안보체제를 해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미국의 고민은 보다 커졌다. 헤이글 장관이 당초 한국 방문(9월 29일∼10월 2일)을 통해 한·일 갈등을 조정한 직후 일본방문(2∼4일)에서 3각 안보동맹을 강화하려던 순방 구상은 일단 차질을 빚고 있는 기류다. 역사 왜곡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 없는 한 3국간 미묘한 갈등이 현실적으로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은 전환기 동북아 정세의 핵심이슈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특히 일본의 신군국주의 가속화 경화에 한국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 호응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헤이글 장관은 방일 기간 중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과 만나 1997년 만든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을 논의한다. 개정 방향은 현재 방어로 한정돼있는 자위대의 역할을 바꿔 적기지 선제타격이 가능토록 길을 열어놓는 쪽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노데라 방위상도 공개강연을 통해 “적 기지 공격은 헌법상 허용돼있다”며 사전 공격권 확보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일 간 지침 개정 내용은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 국가들이 일본의 과거사 도발과 함께 평화헌법 개정움직임, 자위권 개념의 공세적 헌법 해석변경 등 신군국주의 부활의 행보로 여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하나같이 예민한 사안들이다.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 안보수요를 악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보다 확장된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기대를 갖고 꾸준히 이를 요구해왔으며 특히 이는 동아태 지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및 공군기지, 레이더 기지 및 후방지원 기지 등 군사분야별로 3국의 역할분담을 고려한 통합 MD체계를 추진 중이다.

정부로서도 고민이 없는 게 아니다. 냉철한 안보현실과 물러설 수 없는 역사인식의 문제 사이에서다. 무조건 일본에 귀책사유를 돌리고 반대한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정부가 대화의 문 자체를 닫아놓은 것으로 미국에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강화, 공격권 보유 등에 대해 미국의 시각은 정부와 같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다. 정부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한편, 헤이글 장관이 한 국가의 정상을 만난 자리에서 면접관처럼 “한·미·일 3자 안보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한·일 양국의 역사적인 문제를 포함한 현실적인 문제가 잘 관리돼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따지듯 물은 태도를 놓고 결례논란도 일고 있다.

김상협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