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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즐거운 편지’ 중)

황동규 시인이 고등학교 때 쓴 이 시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연애시 중 하나다. 비단 이 시뿐 아니라 시어의 낭비 없는 명료한 그의 시 가운데 열광적 인기를 모은 시들이 많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 연작시’ ‘몰운대행’ ‘미시령 큰 바람’ 등이 그것이다.

그는 1950년대 말에 등단해 55년이 되는 세월 동안 그야말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시를 갈고 닦아온 시인이다. 그 때문에 그를 만날 때마다 뭔가 힘겹지만 새로운 항로를 떠나기 위해 의욕을 보이는 맑은 활기를 발견하게 된다.

황 시인은 “요즘도 잠을 자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그때 그때 입력한다. 잠이 안와 책을 읽으면서 밤을 꼬박 새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황 시인은 문학평론계로부터 “앞서서 변화하고 그 전통이 자신에 의해 부단히 갱신되는 시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시를 썼던 시인은 서울고를 거쳐 서울 문리대 영문과 2학년인 1958년 미당 서정주에 의해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차례로 추천되며 등단했다. 1968년부터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도 재직하면서도 시선집들을 제외하고 열다섯 권의 시집을 꾸준히 냈다. 그는 작은 것에서 삶의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쉼 없이 여행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황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장남이다. 그리고 시인의 딸 시내 씨가 몇 년 전 산문집을 내면서 보기 드문 3대 문인 가족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