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잃고 난 뒤 누구도 믿지 못한 고종의 곁을 지키며 밀사(密使)로 활약한 파란 눈의 호머 헐버트(Homer B Herbert) 박사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6일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와 서울 마포구에 따르면 박사의 64주기 추모식이 12일 합정동 양화진외국인묘지 내 백주년선교기념관에서 열린다. 추모식에는 박사의 증손자 킴벌 헐버트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장, 김종택 한글학회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등이 참석한다.

올해 추모식이 특별한 까닭은 박사의 외가가 설립한 미국 다트머스대 학생들과 한국 대학생들이 ‘헐버트 유스 포럼’을 발족하기 때문이다. 다트머스대는 박사의 외가가 설립했으며 그 역시 다트머스대를 졸업했다. 다트머스대 재학생 30여 명은 추모식에 참석해 한국 학생들과 헐버트 박사 관련 연구를 하기로 약속할 예정이다.

그의 자취는 교육부터 정치·외교 분야까지 다양하게 남아 있다. 1886년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려고 들어와 나흘 만에 한글을 깨치고 3년 만에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저술했다. 입으로만 전하던 아리랑을 채보하고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한 것도 그다.

을사늑약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의 친서를 미국에 전하는 역할을 맡았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에 밀사들을 파견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제4의 특사’로도 불렸다. 일제가 추방했을 때도 헐버트 박사는 ‘헐벗’ ‘흘법(訖法)’ ‘할보(轄甫)’로 불리던 시절을 잊지 않으며 미국에서 각계 인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각종 회의에서 일제 침략을 규탄했다.

그는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40여 년 만에 방한했지만 고령으로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의료원 서울병원)에서 타계했다. 장례는 외국인 최초 사회장으로 치렀으며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묘지에 안장됐다.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활동을 기려 헐버트 박사를 지난 6월 외국인 최초로 ‘이달(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서울시는 세종로에 헐버트 박사 동상을 설치하고 있으며 올해 한글날을 앞두고 공개할 예정이다.

김형운 기자 hw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