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린 세 차례 메이저 대회를 독식하면서 세계 여자 골프를 사실상 평정한 박인비가 ‘그랜드슬램’이라는 신기원에 바짝 다가섰다.

여자 골프에서 시즌 개막 후 열린 메이저 3개 대회를 연달아 제패한 것은 한국전쟁이 벌어진 1950년의 베이브 자하리아스(1956년 사망) 이후 박인비가 두 번째다.

남자 골프까지 영역을 넓히면 1953년 벤 호건(1997년 사망)이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오픈을 내리 제패한 기록이 있다. 호건부터 따져도 무려 60년 만에 박인비가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60년 사이에 아널드 파머(84), 잭 니클라우스(73), 타이거 우즈(38·이상 미국), 애니카 소렌스탐(43·스웨덴) 등 ‘골프의 전설’들이 시즌 개막 후 메이저 3연승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모두 실패했다. 우즈는 2000년 US오픈부터 2001년 마스터스까지 메이저대회를 휩쓸어 ‘타이거슬램’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제 전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은 올해 남은 두 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박인비가 승수를 추가할 수 있느냐에 쏠리게 됐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미국여자골프(LPGA) 챔피언십에 이어 US오픈까지 올해 열린 메이저대회에서 차례로 우승한 박인비는 브리티시오픈(8월 1∼4일)에서 정상에 오르면 역사적인 그랜드슬램이라는 대위업을 이룬다.

그랜드슬램은 보통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휩쓰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여러 스포츠 중 골프에서 가장 빠른 1930년부터 사용됐다. 평생에 걸쳐 4대 메이저대회를 한 번 이상 제패하는 것을 ‘커리어(career) 그랜드슬램’이라 부른다.

그랜드슬램은 한 해에 4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것을 의미한다. 골프에서 4대 메이저대회 체제가 확립된 이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오직 남자 골퍼 보비 존스(1971년 사망)뿐이다. 존스는 1930년 US오픈, 브리티시오픈, US 아마추어선수권, 브리티시 아마추어 선수권 등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했다. 그러나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출범한 1934년 이전의 기록이라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에비앙 챔피언십(9월 12∼15일)이 새로 메이저대회로 격상돼 5대 메이저대회 체제에 접어들었다. LPGA 사무국은 언론 등 여론의 지적에 따라 4개 대회에서만 우승 트로피를 수집해도 그랜드슬램을 이룬 것으로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박인비가 만일 브리티시오픈 우승 달성에 실패해도 9월 열리는 에비앙마스터스를 제패하면 그랜드슬램 달성이 인정된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준우승, 에비앙마스터스에서는 정상에 올랐던 박인비가 지금과 같은 상승세를 잇는다면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작성할 가능성이 높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