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문제 현안에서 ‘대화’를 강조하면서 집권 2기 외교·안보 정책인 ‘오바마 독트린’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오바마 독트린은 과거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전세계 분쟁지역에 적극 개입하는 미국 일방주의 외교·안보 정책 노선에서 벗어나 지역동맹을 토대로 하는 타협과 협상을 통한 세계평화 체제의 구축으로 요약된다. 총성이 끊이지 않는 중동과 영토 갈등으로 일촉 즉발 위기상태인 아시아 등 전세계 분쟁지역에 오바마 독트린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노선 수정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국무장관에 ‘반전파’인 존 케리(매사추세츠) 연방 상원의원을 지명하면서부터 예고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7일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 미국 군대를 이끌 국방장관에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을 지명한 것도 ‘평화는 무력이 아닌 대화로 유지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케리와 헤이글은 타협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오바마 독트린은 16조 달러가 넘는 미국 국가부채 해결을 위한 현실주의 외교·안보정책이기도 하다.

미 브라운대 왓슨 국제관계연구소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두 개의 전쟁’에 쏟아 부은 전비는 4조4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2차세계대전 전비 4조1000억 달러(현재 물가기준 환산액)보다 3000억 달러나 많은 액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무리한 전비 지출에 있다고 보고 집권 2기에서는 과감한 수술에 들어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014년으로 예정된 아프간 철군을 차질없이 진행하면서 2016년까지 57만 명인 육군을 49만 명으로, 20만 명인 해병대를 18만 명 수준으로 줄일 생각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과 북한·이란 등 핵무기 프로그램 추진 국가들에 대해서는 경제 제재 조치 등 강경 대처 전략을 유지할 방침이다. 미국의 무인폭격기 드론은 21일에도 예멘의 와디 아비다 지역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이 탑승한 차량 2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피벗 투 아시아’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중국과는 동반자 관계를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중·일 영토갈등에 대해서는 대화를 유도하면서 ‘현상유지’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오바마 독트린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이념을 신성한 의무로 여기는 강경 매파인 네오콘들에게는 미국의 세계 지배력 상실을 의미한다. 반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국제문제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헨은 21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과의 수교(1972년), 냉전 체제의 종식(1989년), 보스니아 종전의 데이튼 평화협정(1995년) 등을 이끌었던 유능한 외교(effective diplomacy)는 인내, 일관성, 공감, 신중, 대담함 그리고 적과도 대화하려는 의지를 요구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 “1972년, 1989년 그리고 1995년에 이어 또 다른 외교적 돌파를 위한 시간이 왔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