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종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잔설이 남은 캠퍼스에서 유신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던 대학시절을 회고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평소 법치주의의 확립을 강조해 오셨는데.

“민주화란 민주주의의 활성화, 국민의 자유와 인권 보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회운영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1987년 이후에도 소위 운동권 세력들은 민주주의의 활성화에만 집중해 왔고 좌파적 민주주의 이론으로 민주주의 논의를 왜곡시켰습니다. 그 결과 자유주의를 부정하거나 집단적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경향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인권은 상당 수준까지 올라와 있고 민주주의 제도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성취가 이뤄졌습니다.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채널도 거의 다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제일 중요한 법치주의는 여전히 후진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법으로 사람을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만을 법치주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법치주의란 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정 세력이나 특정 집단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 객관적인 규범에 따라 누구나 공정한 룰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 룰을 믿고 삶을 설계하면 미래가 예측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모두들 내 것부터 챙기기 바쁩니다. 그래서 법치주의가 안 되는 겁니다. 법치주의 확립은 국가 프로젝트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치주의를 정치주의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반정치주의, 안티정치주의로 봅니다. 우리 사회는 지식인들을 포함, 정치주의에 매몰돼 있습니다. 정치주의에 매몰돼 있으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권력 투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