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일본 고위 인사 ‘망언’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 책임을 면한 일왕(日王) 중심의 입헌군주제에 있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후 처리에서 ‘평화헌법’과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책임 면제를 맞바꿨고, 일제시대 ‘국가원수’,‘최고 군통수권자’였던 일왕이 ‘평화적 상징’으로 둔갑했다. 그러다 보니 일제시대 군국주의를 주도한 엘리트층도 대거 살아남으면서 일본 정계 ‘보수화’로 이어졌고, 이후 역사의식이 희박한 전후세대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망언’이 쏟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28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잇따른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망언에 대해 “일왕이 부인하고 있다는 게 원인”이라며 “과거사 문제가 한일관계 장애물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그 중에서 위안부 문제가 가장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일왕의 책임 면제가 일본 엘리트층의 ‘집단적 역사의식 부재’로 이어졌고, 모든 과거사 문제의 원류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히로히토 일왕은 1946년 5월∼1948년 11월 열린 도쿄(東京) 전범재판에서 끝내 기소되지 않았다. 헌법상 관례에 따라 내각의 전쟁 결정을 승인했을 뿐, 개전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일본 측이 내건 이유였다. 히로히토 일왕도 1945년 8월15일 ‘대동아전쟁의 종결조서 선언문’에서 “적(미국)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원자폭탄)을 사용했다”고 비난하면서도 “타국의 주권을 배하고 영토를 범함은 물론 짐의 뜻이 아니었다”며 전쟁 책임을 회피했다.

전범재판에 기소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총리 등이 일왕의 전쟁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고, 더글러스 맥아더 미국 태평양전쟁 최고사령관이 냉전시대의 중요한 대(對)아시아 기지인 일본에서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도 한몫했다. 이어 히로히토 일왕은 1946년 1월1일 ‘인간선언’을 통해 신성(神性)을 포기하고 ‘인간’의 지위로 내려왔고, 일본은 전쟁포기·전력 불보유·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평화헌법을 채택했다.

하지만 일왕에 대한 ‘면죄부’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역사왜곡’과 ‘망언’의 근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보수적 색채가 더 짙어지고 있다. 2005년 “일본군 위안부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던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강제적 위안부 모집에 대해서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며 부인한 데 이어 27일 “역대 총리의 담화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일왕제가 근본적 원인이며, 최근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오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등의 신당 창당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일본내 보수를 결집하기 위해 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