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이 수원 20대 여성 엽기살해 사건과 관련해 9일 오전 총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식기는커녕 사회적으로 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책임문제를 거론한 것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경찰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무너진 경찰의 신뢰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찰 최고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 청장의 사퇴 결정은 문화일보가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처음 보도한 지난 4일 이후 5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조 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13층 대청마루에서 열린 ‘사과문’ 발표 과정에서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제가 물러나겠다”면서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조 청장은 사과문을 통해 “경찰의 무성의함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축소와 거짓말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이 자책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한 직후 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조 청장의 이 같은 발표 배경은 경찰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면서 단순히 경찰서장의 책임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번 사건이 단순한 경찰의 부실 수사가 아니라 112 신고시스템의 구조적인 무사안일과 경찰의 거짓말 문제로 이어지면서 경찰의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점은 조 청장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조 청장과 면담을 한 유가족들은 “경찰이 발표한 수사내용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어 믿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인들의 분노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앞에 모여 경기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예정해 둔 상태였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성폭행 사건처럼 다급한 일이 벌어지면 112로 신고하라고 하는데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믿고 있던 경찰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의 공분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장 사퇴라는 결단이 없을 경우 파장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사퇴 의사 결정에는 본인 이외에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다는 게 조 청장의 설명이다. 조 청장은 “청와대와의 조율은 없었다”면서 “전적으로 개인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원기자 e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