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성이 정치 발전에 나름대로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지만, 지나칠 경우 상대 정파를 투쟁과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극단적인 ‘정쟁(政爭)’으로 흐르기 쉽다. 내 주장만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리다는 흑백 논리식 정치 행태에는 ‘승복의 문화’가 착근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공천과 선거, 당과 국회 운영 등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을 수용하는 ‘승복 문화’가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으로 17대 국회에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2005년 초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과거사법 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표결 처리에 응하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법안 처리는 됐지만, 여야 원내 지도부가 결정한 합의 내용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열린우리당도 그해 말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해 1년여 이상 지속된 여야 간 정쟁의 단초를 제공했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승복의 문화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사학법은 지난해 7월 무려 1년6개월여 만에 여야 간 합의로 재개정됐다.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국회 다수당은 먼저 국회의원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당론 투표나 강행 처리보다는 소수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가장 우선시하고, 소수당도 물리적 의사진행 방해라는 반의회적 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서로 한발씩 양보한다면 승복의 정치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정파적 목적 달성에만 주력하다 보면 여야 간 극한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법안 처리나 국회 운영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승자 독식주의’도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에선 선거라는 절차가 기본적으로 승자 독식의 구조를 갖지만, 승자만이 모든 정치 자원을 독점하는 행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 정파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정치 문화가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