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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 미국의 금융범죄 처벌

‘테라 사태’핵심 권도형 美송환
美, 중범죄 강력예방·억제위해
선고형량 합산‘병과주의’채택

영미권 아닌 국가들‘흡수주의’
여러범죄땐 가장 중한 죄 처벌
권씨, 韓송환 요구 소송내기도

보험사에 사기 저지른 와이스
역대 최장 복역기간 선고받아
폰지사기 메이도프는 150년형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4) 씨가 미국과 한국의 공방 끝에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되면서 미국의 금융범죄자 처벌 형량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입증된 각 범죄의 선고 형량을 모두 합산하는 ‘병과주의(倂科主義)’를 채택하고 있어 대규모 금융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이 사실상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권 씨의 경우에도 미 검찰에 의해 기소된 모든 혐의가 유죄로 판결된다면 최대 130년 형에 처할 수 있다. 지난 2023년 3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체포된 권 씨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인도됐다.

◇결국 미국으로 인도된 권도형… 모든 혐의 유죄 시 최대 130년 형 = 지난 2일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몬테네그로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권 씨는 이날 맨해튼 소재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 심리에 출석했다. 권 씨는 이날 법정에서 자신이 영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만 인정했으며, 그 외의 발언은 따로 하지 않았다. 권 씨는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직후 뉴욕 남부연방지검에 의해 증권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날 새로 공개된 공소장에서 권 씨가 자금세탁 공모 혐의로도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둘러싼 범죄혐의는 총 9건이 됐다.

미 법무부 설명에 따르면 권 씨가 위 9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받으면 최대 130년 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상품사기 2건은 각 최고 10년, 증권사기 2건은 각 최고 20년,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2건은 각 20년, 상품사기·증권사기·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공모 2건은 각 최고 5년, 자금세탁 혐의 1건은 최고 20년의 징역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기징역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메릭 갈런드 미 법무부 장관은 “권 씨는 기소된 내용처럼 400억 달러(약 58조6000억 원) 이상의 투자자 손실을 초래한 테라폼랩스의 가상화폐 등 정교한 계획에 대해 미 법정에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권도형(가운데)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경찰에 의해 이송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통적으로 금융범죄 처벌 강한 美… 죄목별 형량 합산하는 병과주의 채택 = 권 씨의 형량이 사실상 무기징역 수준으로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미국이 한국과 달리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두 개 이상의 법률을 어겨 각각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판결에 따른 형량을 각각 복역하게 된다. 즉 해당 피의자는 자신이 유죄를 선고받은 모든 사안에 대해 하나씩 순서대로 죗값을 치르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중범죄자들은 10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기도 하는데, 이러한 미국의 제도는 사회 안전과 엄격한 범죄 대응이라는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연쇄 살인, 대규모 금융 사기, 마약 밀매 등 무거운 범죄에 대해 무기징역 수준으로 형량을 합쳐 범죄를 강력하게 예방·억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다만 유기형을 요구하는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사실상 무기형을 받게 되거나, 경미한 범죄 여러 건을 저지른 피의자가 중대 범죄 하나를 저지른 피의자보다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권 씨도 이러한 미국의 병과주의에 따른 엄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몬테네그로 법원에 수차례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었다. 한국 정부도 권 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지만 몬테네그로 정부는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권 씨의 미국행을 결정했다.

병과주의가 미국, 호주, 영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주로 채택되고 있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이와 대치되는 개념인 흡수주의(吸收主義)나 가중주의(加重主義)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흡수주의의 경우 한 행위로 여러 범죄가 성립될 때 가장 중한 죄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중주의의 경우 여러 죄에 대하여 하나의 전체 형을 선고하는데, 이때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을 일정 비율로 가중하는 방법이다.

◇대표적 미국 금융범죄 처벌사례는… 최대 845년 형도 = 대규모 금융범죄를 저질러 10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은 가장 대표적 인물은 월가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의 대가로 불리는 버나드 메이도프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하기까지 한 유대계 미국인인 메이도프는 30여 년 동안 투자자 3만여 명을 상대로 약 6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투자도 진행하지 않고 투자금을 돌려막는 사기를 저질렀다. 이에 그는 2009년 150년 형을 선고받았고, 2021년 복역 중 사망했다. 또 보험회사를 상대로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은 뉴욕 출신 사업가 숄람 와이스는 2000년 역대 가장 긴 복역 기간인 845년, 공범이었던 키스 파운드는 같은 해 역대 2위인 740년 형을 선고받았다. ‘고수익 보장’ 사기로 수천만 달러를 챙긴 노먼 슈밋(330년형), 텔레뱅킹 사기범 로버트 톰슨(309년형)이 뒤를 이었다.

다만 미 연방법원이 모든 재판에서 병과주의 원칙을 적용하지는 않다 보니 일각에서는 금융범죄의 실제 형량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7개 범죄 혐의에 모두 유죄 평결이 나온 데 따라 최대 115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을 벌인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경우 2022년 기소된 11건의 혐의 중 4건에 관해 유죄평결을 받았으나 결국 11년 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박상훈 기자 andre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