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 우파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국제적 경종을 울렸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와 여당이 지난해 봄부터 전력을 다해 결의안을 무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 내부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하원 외교위는 26일 전체회의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HR121호)에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의 의견이 반영된 수정결의안을 상정, 찬성 39, 반대 2표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9월에도 위안부 결의안이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통과됐다가 본회의 상정도 안된 채 무산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전체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3분의 1을 넘은 총 149명이 결의안을 지지·공동발의한 상태다.

◆“일본의 기억상실증”비판 = 이날 회의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인 톰 랜토스(민주·캘리포니아) 외교위 위원장은 “전후에 독일은 올바른 선택을 했지만 일본은 반대로 역사적인 기억상실증세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최근 일본 정부관계자들이 워싱턴포스트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광고를 낸 것은 하원 외교위원회 소위에서 증언한 위안부를 포함해 생존하는 위안부들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이번 결의안은 이런 끔찍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진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위 아태소위 위원장인 에니 팔레오마배가(민주·사모아) 의원은 “청문회에서 3명의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증언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명백하게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리 애커먼(민주·뉴욕주) 의원·데이비스 스콧(민주·조지아주)·다이앤느 왓슨(민주·캘리포니아주) 의원도 일본의 사과를 촉구했다.

◆찬반 공방 = 공화당 소속 의원들도 대부분 찬성했지만 일부 의원들은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 국제분쟁으로 규정하며 미 의회가 이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론을 펴기도 했다. 또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사과해 왔다며 일본정부를 두둔했다. 도널드 만줄로(일리노이주) 의원은 “북한문제, 핵문제 등 큰 이슈가 많은데 미 의회가 동맹국간의 분쟁에 개입하는 목적이 뭐냐”고 반대했다. 토머스 탠크레도(콜로라도주)·데이너 로라바커(캘리포니아주)·론 폴(공화·텍사스주) 의원도 “일본 정부가 이미 사과했다”며 가세했다. 공화당 간사인 일레아나 로스레티넌(플로리다주)의원도 “일본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며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일동맹이 중요하다는 점을 추가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반대표는 공화당 소속인 탠크레도 의원과 폴 의원이 던졌다 .

◆일부조항 수정 =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은 당초 제출됐던 ‘혼다 결의안’보다 내용이 완화됐다. 일본 정부가 과거 제국주의 당시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시인,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지위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사실상 ‘권고’로 수위가 낮아졌다. “냉전 이후 전략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일 동맹은 공동의 핵심이익과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하원 결의안 121호 요지

하원은 다음과 같은 뜻을 결의한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군이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적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수준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성적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한 사실이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끔찍한 범죄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워싱턴=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