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3의 대도시 시카고. 도심가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50분 정도 전철(CTA)을 타고 가면 18번가 역이 나온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대안은행’으로 불리는 ‘액시온 시카고’(ACCION Chicago)는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1일 방문한 액시온은 간판이 없었다면 금융기관인지, 전당포인지 헷갈릴 정도다.

직원이라고 해봤자 임원 포함해서 고작 8명. 직원들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이들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이들은 시카고가 속해있는 일리노이주 쿡(Cook) 카운티를 비롯해 인근 12개 카운티의 소규모 사업자에겐 ‘천사’ 같은 존재다.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대부 및 마케팅을 총괄하는 케이트 존슨 부사장은 “2005년 말까지 1572건에 총 1150만달러가 대출됐다”고 말했다.

액시온 시카고가 출범한 것은 1994년. 마이크로크레딧(무담보소액대출제도) 기관답게 대출금액은 크지않다.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은 1만달러를 밑돌고 있다. 다수에게 소액을 고루 대출해준다는 설립취지 때문이다.

대부담당자 헤더 로저스씨는 “우리의 목표는 능력은 있지만 신용 등에 문제가 있어 기존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줘 궁극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혜택이 골고루 갈 수 있도록 1인당 대출한도액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주요고객은 소규모 서비스 및 소매업을 하는 자영업자들. 미용사, 배관공, 탁아소, 음식점 주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액시온은 대안은행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금융기관에 속한다. 가난한 자영업자에게 ‘퍼주기’식으로 돈을 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담보를 요구하고, 엄격한 대출심사도 한다. 다만 신용이 떨어지더라도 사업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대출이 가능하다.

액시온 시카고 측은 “신용점수를 아주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사업능력”이라며 “액시온만의 독특한 능력검증평가를 통해 대출여부를 가린다”고 말했다.

재원마련은 일반기업 및 개인기부금도 있지만 주로 금융기관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후원기관 명단을 보면 JP모건 체이스, HSBC, 시티그룹 등 굵직한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다. 이들은 돈을 대주면서 재원이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직접 이사회 멤버로 참여, 대출심사를 맡고 있다.

액시온 시카고 이사회 멤버 15명 중 10명이 금융기관 현직 간부들이라는 점은 아이로니컬하기까지 했다. 대출승인을 담당하는 심의회는 아예 금융기관 간부들로만 구성돼 있다. 은행 이용이 어려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신용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은행 고객층을 확대하려는,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사업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액시온 시카고에서 돈을 빌린 매디오르 움바예씨는 “2년 전만 해도 은행 이용을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신용점수가 상당히 올라가 조만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액시온 시카고의 대부담당자 헤더 로저스씨는 “액시온의 설립취지는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그냥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들의 자립을 지원해 궁극적으로 은행 이용이 가능한 어엿한 사업자로 만들어 지역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해 액시온의 출발이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에서 시작됐음을 시사했다.

시카고 = 최준영기자 cjy1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