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23일 오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에서 1.6㎞ 떨어진 배에 탄 채 선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수습자 가족들 호소

“하루만에 올라올 수 있는 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어제 발에 박힌 칼 뽑는 꿈꿔”
1.6㎞ 떨어진 배서 현장 주시

“팽목항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수없이 잠을 잤어도, 발에 박혀 있던 칼이 뽑히는 꿈은 오늘 처음 꿨습니다.”

23일 오전 4시쯤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1073일 만에 선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기대감에 휩싸였다. 오전 2시에 팽목항에 도착했다는 희생자 임요한 군 아버지 임온유(56) 씨는 “선체가 곧 인양된다는 설렘 덕분이었는지,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내 발에 꽂혀 있던 길이 10㎝ 되는 칼이 뽑히는 꿈을 꿨다”며 “이렇게 빨리 (바다 밖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라고 눈물을 삼켰다.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을 비추는 팽목항 등대 옆에는 여전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다른 유가족들은 인양 작업이 이뤄지는 맹골수도 현장으로 먼저 출발한 ‘미수습자’ 가족으로부터 수면 위 선체의 윤곽 사진을 전해 받고 “침몰하는 배의 기억만 남아 있는데 선체 일부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생의 삼촌이라는 한 남성은 분향소 밖에 설치된 9명의 미수습자 현수막을 본 뒤 “이 친구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네. 빨리 돌아와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특히 오전 8시가 지나면서 날이 밝고 조금씩 내리던 비도 잦아들며 인양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가족들은 다시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뉴스에서 ‘선체 고박 진행 중’이라는 자막이 나오자 “저 정도면 거의 다 올라온 것 아니냐” “저 부분이 창문이고, 저기 밧줄이 묶여 있는 것 같다”며 손으로 TV를 가리키기도 했다. 현장에서 뉴스를 지켜보던 한 자원봉사자는 “물속에 잠겨 있던 (세월호 침몰의) 진실이 이제야 나오고 있다”며 “팽목항은 정치적 성향과 종교를 떠나 ‘부모의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먼저 팽목항에 도착한 미수습자 가족 일부는 사고 해역에서 1.6㎞ 떨어진 동거차도 인근 해상에서 배를 타고 세월호 인양을 기다렸다. 배 안에서 밤을 꼬박 새운 가족들은 오전 5시 37분쯤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세월호 선체 윗부분 사진이 TV에 나오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단원고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48) 씨는 몇 번이고 “이게 세월호 배래요. 제발 찾아주세요”라고 통곡하며 딸을 꼭 찾아달라고 하소연했다.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48) 씨도 목놓아 울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김영석 해수부 장관을 만나 “9명을 가족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오신 거잖아요. 꼭 찾아주세요.” “반드시 9명을 찾아줘야 합니다. 저 집에 가고 싶으니까, 집에 갈 수 있도록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빨리 찾아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며칠이 더 걸리더라도 바다 위에 남아 물 위로 부양한 선체를 안전하게 반잠수식 선박에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배에 타지 않은 가족들은 동거차도 야산 정상에 올라 현장을 지켜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면 위 안개 때문에 윤곽이 보이지 않던 선체도 날이 밝으며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출발하지 않은 유가족들은 먼저 팽목항에 도착한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인양 상황을 묻기도 했다.

진도=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