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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학구마을의 ‘숲속의 추억’ 별장에서 탈출한 뒤 시신이 발견된 신촌마을의 매실밭까지 이동한 경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지점 간 직선거리는 약 2.7㎞다.

23일 검경에 따르면 유 전 회장이 별장을 탈출한 시점은 지난 5월 25일 새벽 시간대로 추정된다. 이때는 검찰이 별장으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송치골가든을 급습해 주인 변모(61) 씨 부부를 범인은닉 등 혐의로 긴급 체포하기 직전이다.

유 씨는 당시 운전기사 양회정(56·공개수배) 씨와 함께 도주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유 씨가 양 씨의 차량을 타고 달아났는지, 두 사람이 곧바로 별장 주변에서 헤어졌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양 씨와 유 씨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양 씨가 유 씨와 헤어진 뒤 곧바로 전주로 이동해 모 인사에게 유 씨를 돕기 위한 지원군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문화일보는 탈출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기 위해 22일 오후 ‘숲속의 추억’ 뒤편에 어떤 탈출경로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별장 동쪽에는 작은 개울이 있고 그 개울을 건너자 전남 구례에서 순천으로 이어지는 폐 철도터널이 위치해 있었다. 별장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m여 떨어진 이 터널은 길이가 1㎞에 달한다. 이 마을 주민 김모 씨는 “월등면 상동마을로 이어지는 이 터널을 통과만 하면 조계산, 경남 하동 등 여러 방면으로 도주할 수 있는 길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유 씨가 고령인데다 다리가 불편한 점으로 미뤄 이 터널을 통과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별장 탈출 직후 잠시 은신했을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양 씨가 유 씨와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졌으나 검경의 검거 작전에 부담을 느껴 다시 순천 쪽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 씨는 먹을 것과 현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이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별장에서 매실밭까지의 이동 경로는 대략 3가지로 추정이 가능하다. 먼저 최단거리인 국도 17호선 주변을 따라 이동하는 경로다. 이 경로를 선택하면 별장 옆 계곡을 따라 송치재 휴게소까지 간 뒤 순천∼구례 간 옛 도로를 타고 내려가게 된다. 옛 도로는 학구삼거리에서 1.3㎞ 못 미친 지점에서 국도 17호선과 만난다. 그러나 유 씨가 차량이 많이 다니는 차도를 선택했을 가능성은 낮다. 또 다른 경로는 주변 산길을 이용하는 약 4.5㎞ 구간이 있으나 마을 주민들조차 이 길의 존재를 몰라 유 씨가 이를 알 리 없다. 또 바랑산 자락을 경유하는 약 9∼10㎞ 구간은 거리가 너무 멀어 70대 노인이 혼자가기 어려운 길이다. 따라서 양 씨 등 누군가가 한밤중에 유 씨를 차량에 태워 매실밭 주변으로 이동해 유 씨를 은신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순천 = 정우천·박팔령 기자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