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을 DNA 감정 결과를 통보받은 뒤에도 소홀히 보존해 훼손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3일 전남 순천경찰서에 따르면 순천시 서면 학구리 박모(77) 씨의 매실 밭에서, 나중에 유 전 회장으로 밝혀진 변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 6월 12일 오전 9시쯤이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현장을 보존한 뒤 검사의 부검 지휘가 내려지자 시신을 수습했다. 이때 현장보존 작업을 중단한 것은 규정상 하자가 없다. 그러나 수습된 유 전 회장의 시신도 연고자가 없는 단순 행려 변사자로 취급되면서 40일 넘게 순천 성가롤로 병원 영안실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실제로 유 전 회장의 시신으로 확인된 지난 21일 오후에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결과 머리카락과 뼛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찰이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사건 현장을 얼마나 허술하게 다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22일 새벽 유 전 회장의 시신이 수습된 현장을 촬영하려던 취재진 100여 명이 몰렸지만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조차 설정되지 않았다. 방송 취재진들의 카메라가 현장에 남겨진 유 전 회장의 백발과 현장 주변 상황을 촬영하는 내내 어느 누구도 현장 보존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일부 취재진들은 “취재진들이 현장을 마구 밟고 다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변사자 발견 후 40일 동안 수풀도 우거져 누가 다녀갔는지 발자국 모양도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이며 지형의 높낮이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변사사건 발생 후 검사 지휘 보고를 받은 뒤 통상 관례에 따라 현장보존을 하지 않아 왔다며 이는 통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조속 검거를 지시했던 유 전 회장의 신원이 확인된 뒤에도 긴급하게 현장보존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경찰은 또 21일 오후 8시쯤 국과수의 DNA 감정 결과를 경찰청으로부터 통보받은 후에야 부랴부랴 신원 확인 작업에 따라 지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으며, 현장에서 수집한 각종 유류품들을 조금만 면밀하게 검토했어도 유 전 회장이라는 추정이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에는 고개를 숙였다.

순천 =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